안녕하세요.

안개가 짙게 끼었는데, 출근 잘하셨나요?

저는 어젯밤에 숙직 서고 이제 집에 들어갑니다.

며칠 전에 제 아들이 다쳐서 병원에 갔습니다.
이제 겨우 15개월 된 녀석인데 누굴 닮아서 그렇게 고집이 센지...
험하게 놀다 다쳐 병원응급실에 실려가 머리 엑스레이나 찍고...
앞으로 이 녀석과 승강이 깨나 하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어떡해요. 저를 빼쐈는데...

흔히,
투정이나 심술깨나 부리게 생겼다, 꽤나 고집이 세겠군처럼,
'꽤나'나 '깨나'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오늘은 이 두 개가 어떻게 다른지 갈라보겠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깨나'는
"어느 정도 이상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입니다.
돈깨나 있다고 남을 깔보면 되겠니?, 얼굴을 보니 심술깨나 부리겠더구나처럼 씁니다.

'꽤나'는
부사 "보통보다 조금 더한 정도로"를 뜻하는 '꽤'의 힘줌말입니다.
이번 시험에 붙으려면 꽤나 고생해야 할 것 같다처럼 씁니다.

그리고

'깨나'는 보조사이므로 앞말과 붙여쓰고,
'꽤나'는 부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씁니다.

어렵지 않죠?

제가 지금 제 아들 때문에 걱정하고 있듯이,
저희 부모님도 우리를 이렇게 키웠을 겁니다.

세상에 나와 행세깨나 하도록 키워주신 부모님,
보나 마나 꽤나 고생하셨고, 눈물깨나 흘리시면서 우리를 키우셨을 겁니다.

아침에, 생각난 김에 부모님께 뜬금없이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은 어때요?

부모님이 꽤나 기뻐하실 겁니다. ^^*

우리말123


보태기)
1. 대부분의 사전에 '꽤나'가 '꽤'의 힘줌말로 올라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기에는 '꽤나'가 많이 나옵니다.

2. 2004년 여름 MBC우리말나들이에 이 내용이 소개됐습니다.
시대와창에서 나온 우리말나들이 책에도 이 내용이 있습니다.(116쪽)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오늘은 두 개를 보냅니다.

앞에서 '승강이'와 '빼쏘다'는 낱말을 써서...

[운전자가 실랑이를 벌인다]

어제는 아는 분과 함께, 밭고랑에서 전어를 구워먹었습니다.
대가리 속에 깨가 서 말이나 있고,
그 냄새를 맡으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
역시 맛있더군요.

아는 분이 농장으로 초대해서 갔었는데,
농장이 이천이라서 좀 멀더군요.
일요일이면 당연히 자야하는 늦잠도 못 자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죠.

가는 중에 차가 밀려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교통방송을 들으니,
제가 가는 길 앞에서 접촉사고가 나, 운전자들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빨리 가서 전어를 구워 먹어야 하는데... 이렇게 길이 밀리니...

흔히,
교통방송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어디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운전자들이 길 위에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입니다.

여기서 ‘실랑이’는 잘못 쓰인 말입니다.
‘승강이’가 옳습니다.

‘승강이(昇降-)’는,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소한 일로 너와 승강이할 시간이 없다처럼 쓰죠.

‘실랑이’는,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을 말합니다.
‘실랑이를 당하다/빚쟁이들한테 실랑이를 받는 어머니가 불쌍하다’처럼 씁니다.

차량 흐름을 방해하는 두 운전자의 짓거리는
‘승강이질’이지 ‘실랑이질’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상대편이 잘못했다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것이지,
공연히 남을 못살게 구는 짓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실랑이’라는 말은 사전에 있어도 ‘실랭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실래이’는 ‘실랑이’의 경상도 지방 사투리입니다.
‘승강이’라는 말은 사전에 있어도 ‘승갱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번 주는
자기주장만 옳다고 남과 승강이하는 일도 없고,
뜬금없이 다른 사람에게서 실랑이 당하는 일도 없는,
멋진 한 주를 보내시길 빕니다.

보태기)
실랑이는 본래 과거장에 쓰던 '신래(新來)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과거 합격자를 발표되면 호명 받는 사람은 예복을 갖춰 입고 합격 증서를 타러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바로 이 호명이 '신래위'입니다.
이때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합격한 사람을 붙잡고 얼굴에 먹칠을 하거나,
옷을 찢으며 합격자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 ‘실랑이’입니다.


[빼다 박다 >> 빼박다/빼쏘다]

어제 아들 이야기 한 김에 오늘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제 아들은 저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어쩜 저렇게 지 아버지를 쏙 빼다 박았지?"라고 감탄합니다.
아들이 저를 닮아서 참 잘생겼거든요.

오늘은 '빼다 박다'를 소개드릴게요.

흔히,
누가 가족 중 한 사람을 매우 닮았을 경우에 흔히 '빼다 박았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쏙 빼다 박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좀 어색합니다.
무슨 말뚝을 (이곳에서) 빼서 (저곳으로) 박았다면,
빼다 박았다는 말이 될지 몰라도,
사람 모습을 보고,
빼다 박았다고 하면 좀 이상합니다.
뭐, 아빠 코를 빼다가 아기 얼굴에다 박았다는 말도 아닐 것이고...

이런 때 쓸 수 있는 좋은 우리말이 있습니다.
바로 '빼쏘다'와 '빼닮다'입니다.
'빼쏘다'는,
"성격이나 모습이 꼭 닮다"는 뜻으로,
엄마를 빼쏜 딸, 맏아들은 생김새가 아버지를 빼쐈다처럼 씁니다.

'빼닮다'는,
"생김새나 성품 따위를 그대로 닮다"는 뜻으로,
어머니를 빼닮은 여자 아이, 그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처럼 씁니다.

제 아들과 제가 닮은 것을 두고 이야기할 때는,
빼쏘다나 빼닮다를 쓰시면 됩니다.

저는,
저를 빼닮은 제 아들이 참 좋습니다.

보태기)
'자신의'의 다른 말은 '지'가 아니라 '제'입니다.
'제 아버지'라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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