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을 내다봤습니다. 눈이 오지 않았네요.
이번에는 기상청이 헛짚었나 봅니다.
그래도 오전에는 눈이 좀 온다고 하네요. 어제 겁준 것처럼 많이 오지는 않지만...
눈이 내리면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밖에 나가 눈 위도 한번쯤 걸어보세요.
제아무리 바빠도 화장실 갈 시간은 있듯이,
아무리 바빠도 점심 먹고 눈 위를 한번 걸을 시간은 낼 수 있죠?
눈 위를 걷고 나면 지나간 자리에 자국이 남습니다.
그게 발자국일까요, 발자욱일까요?
헷갈리시죠? 둘 다 맞을까요?
표준어는 발자욱이 아니라 발자국입니다.
시에서 많이 나오건 소설에서 많이 나오건 간에,
표준어는 '발자욱'이 아니라 '발자국'입니다.
내친김에,
"발자국 소리에 깜짝 놀랬다"는 월(문장)에서 틀린 곳을 찾아보세요.
두 군데가 틀렸습니다.
1. 발자국은 발로 밟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자국이므로 그 자국이 소리를 낼 수는 없습니다.
발걸음 소리가 맞습니다. 발자국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
2. 깜짝 놀랬다도 틀렸습니다.
놀래다는 놀라다의 사동사입니다.
'놀래다'는 '놀라다'의 사동형으로 '놀라게 하다'는 뜻입니다
사동사는
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지 않고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움직씨입니다.
따라서,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그를 놀래 주자.
그들이 그에게 총격을 가해 온 것은 그를 놀래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처럼 쓰시면 됩니다.
발자국 소리에 깜짝 놀랜 게 아니라,
발걸음 소리에 깜짝 놀란 것입니다.
한발짝 더 나가면,
'놀래키다'는 충청도 지역에서 쓰이는 '놀래다'의 사투리입니다.
'니가 나를 놀래키는구나.'는
'네가 나를 놀래 주는구나.'처럼 쓰는 것이 바릅니다.
오늘 눈 좀 내려 겨울 가뭄도 없애고,
탁한 제 마음도 맑고 깨끗하게 씻어주길 빕니다.
눈을 보며 오늘만이라도 예쁘고 고운 말만 쓰도록 힘쓰겠습니다.
욕 안하고...^^*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홍길동 선생님 혜존]
이제 곧 졸업 철이군요.
며칠 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몇 개 받았습니다.
남자에게 군대 갈래 박사학위 논문 쓸래 하고 물으면 다들 군대를 열 번이라도 간다고 하고,
여자에게 애 낳을래 박사학위 논문 쓸래 하고 물어도 차라리 애를 몇 명 더 낳고 말겠다고 할 만큼 힘들다는 박사학위 논문.
80평생 살면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보람찬 일 중의 하나가 박사학위 논문 쓴 거겠죠.
논문을 받아보면,
거지반 이렇게 씌어있습니다.
‘홍길동 선생님 혜존
OOO 드림‘
오늘은 혜존을 좀 짚어볼게요.
일단, 이 혜존은 일본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그 지긋지긋한 일본말 찌꺼기입니다.
국어사전에서 혜존(惠存)을 찾아보면,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 따위를 남에게 드릴 때에 상대편의 이름 아래에 쓰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말로 ‘혜감(惠鑑)’을 올려놨죠.
혜감도,
“‘잘 보아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을 남에게 보낼 때에 상대편 이름 밑에 쓰는 말.”로 ‘혜존’과 같은 뜻입니다.
혜존과 혜감을 가지고 ‘삐딱선’을 좀 타 보면,
이 낱말은 “훌륭한 사람이 쓴, 이 훌륭한 서적을 잘 간직해 달라”는 뜻으로,
권위 있는 학자가 제자나 후배들에게 자기가 쓴 책을 줄 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내가 쓴 이 훌륭한 책을 보고, 너희들이 한 수 배우도록 하여라.”는 뜻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교수님이나 선배님들께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드리면서,
굳이 한자를 써서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으면,
(꼭 그렇게 해야만 격이 맞다고 생각하신다면...)
‘OOO 선생님
OOO 근정(謹呈)’이라고 쓰시면 됩니다.
그러나 저는,
‘○○○ 선생님께 ○○○ 드립니다.’
‘○○○ 선생님께 삼가 드립니다’고 쓰는 게 더 맘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