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 편지를 보시고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리네요.
보기에는 좋지만 벌써 집에 갈 일이 걱정이네요.

오늘 아침 뉴스에서 기분 좋은 걸 봐서 소개할게요.
아침7:34분 KBS뉴스에서 일본의 공무원 이야기를 하면서,
"... 이 자리를 빌려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흔히 '이 자리를 빌어...'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빌려'가 맞습니다.
예전에 보낸 편지를 붙입니다.

오늘은 어제 받은 답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리말 편지를 갈음할게요.




'감옥'과 '죄수'에 대하여


안녕하십니까?
매일매일 아침마다 박사님의 편지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말씀은 생략하고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교정직공무원 즉, 현직 교도관입니다.
우리가 쓰지말아야 할 말에는 왜놈들 말도 있지만,
우리말 중에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뿐이지요.

우선, ‘감옥’에 대하여,
현재 우리나라에 감옥은 없습니다. ‘교도소’와 ‘구치소’만 있을 뿐입니다.
옛날 일제 암흑의 시대에 감옥이 있었고, 광복 후에는 ‘형무소’로 바꾸었다가, 교정교화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다시 ‘교도소’로 바꾼 것입니다.
‘교도소’나 ‘구치소’를 ‘감옥’이라고 하는 것은 ‘대한해협’을 ‘현해탄’이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 ‘죄수’에 대하여,
‘죄수’의 사전적 의미에 대하여는 불만이 있을 수 없지만,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에는 ‘수용자’라 함이 좋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죄수고, 교도소에 있는 사람은 수용자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감옥’을 ‘교도소’로 명칭을 바꾼 취지와 같습니다.
물론, 죄를 짖고 벌을 받기 위하여 교도소에 들어왔지만, 교도소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죄인이 아닙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인간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듯이 그들은 교정교화의 대상인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일뿐입니다.
[수용자는 다시, 미결수용자(주로, 구치소에 수용)와 기결수용자(주로, 교도소에 수용. ‘수형자’라고도 함)로 구분합니다]

이 편지는 박사님이 '죄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에 대하여 잘못이 있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앞으로는 고쳐 써야 할 말이라고 생각되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건강하십시오.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 이 자리를 빌려...]

안개가 짙게 끼었네요. 출근 잘 하셨죠?

주말 잘 보내셨죠?
저는 작년 마지막 날에는 가족과 함께 찜질방에 갔고,
올 첫날은 집에서 애들과 함께 뒹굴었습니다.

찜질방에서 박범신 님의 ‘남자들, 쓸쓸하다’는 산문집을 봤는데요.
대한민국 모든 여자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기회가 되면 꼭 보세요.
제 아내도 지금 보고 있습니다.

연초라 좋은 내용으로 시작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작년 반성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말 시상식에서 꼭 지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상을 받는 사람 거의 다가,
‘이 자리를 빌어 OOO에게 감사하고...’라는 말을 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분들도,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올 한 해 많이 도와주시고...이 자리를 빌어 시청자/청취자님께 감사하고...’

아마,
올 초 행사장에서도,
그런 말이 많이 나올 겁니다.

그러나 ‘이 자리를 빌어...’는 틀린 말입니다.

최근에 맞춤법이 바뀐 게 18년 전인 1988년입니다.
그전에는 ‘이 자리를 빌어 OOO에게 감사하고...’라는 말이 맞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빌다’에
1. 남의 물건을 도로 주기로 하고 가져다가 쓰다.
2. 남의 도움을 보수 없이 그냥 힘입다.
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리다’는,
‘도로 찾아오기로 하고 남에게 물건을 얼마 동안 내어 주다’로
‘빌다’와 ‘빌리다’를 갈랐습니다.

그러나 1988년 맞춤법을 바꾸면서,
일상에서 잘 가르지 않고 가르기도 힘든 이 두 낱말을
‘빌리다’로 통일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빌다’에는,
1.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
2.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호소하다
3.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다.
는 뜻밖에 없습니다.
물건이나 생각을 주고받는다는 뜻은 없습니다.
또, 어디에도
‘이 자리를 빌어 OOO에게 감사하고...’에 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빌리다’는
1.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
2.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
3.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
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3에 나온 뜻을 따르는 보기를 보면,
성인의 말씀을 빌려 설교하다/그는 수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의 속 이야기를 풀어 갔다./신문에서는 이 사건을 고위 관리들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어부의 말을 빌리면 토종 어종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강쇠의 표현을 빌리자면 씨가 안 먹는 말이라는 것이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었는데요.
정리하면,
인사말을 할 때 흔히 말하는 ‘이 자리를 빌어...’는 틀리고,
‘이 자리를 빌려...’가 맞습니다.

제가 우리말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
이 편지를 빌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외치고 싶습니다.
아니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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