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8] 우리말)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조회 수 9197 추천 수 89 2008.12.29 09:22:47
"뭔일이다냐? 벨 일이 다 있네. 뜬금없이 뭔일이여?"
"그냥 어머니 추우실까봐 문에 비닐 좀 댈라고요."
"난 갠찬한디, 암시랑토 안 한디 멀라고 먼 길을 왔다냐. 내가 살아서 괜히 니 고생 시키는갑다."
"뭔소리요. 어머니는 내 기둥인께 어머니가 건강하셔야 이 아들도 든든하니 회사일 잘하죠. 그러니 따뜻하게 계셔야죠."


"이거 한수꾸락 먹고 해라."
"이것만 해 놓고 먹을게요."
"시그믄 맛 업은게 따땃할 때 먹어라. 아침도 못 먹고 나왔을 텐디."


어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시골집에 어머니가 혼자 계시는데 요즘 날씨가 추워 외풍에 고생하실 것 같아 어제 가서 창가에 비닐을 좀 쳐드리고 왔습니다.
시골집이 오래돼서 외풍이 좀 있거든요.
집에서 새벽 네 시 반에 나서 다섯 시 반에 광명에서 기차를 타고 목포로 가서, 목포에서 다시 버스 타고 해남으로...
해남에서 철물점 들러 쫄대와 못을 사고, 농자재상에 들러 하우스용 비닐을 사서 택시 타고 집에 들어가니 10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유리와 섀시로 된 부엌문을 먼저 비닐로 덮고, 안방 뒷문도 뒤꼍으로 돌아가서 비닐로 잘 덮었습니다.
마루로 들어가는 문과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은 겨우내 쓰지 않도록 그냥 비닐을 덮고 못을 치면 되지만,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수시로 열어야 하기에 비닐을 친 채 열릴 수 있도록 문에다 비닐을 박아 뒀습니다.










그냥 저 혼자의 생각이자 바람이지만,
이번 겨울을 외풍이라도 없이 편히 잘 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우리말 편지가 아닌 다른 이야기 좀 해 볼게요.


며칠 전에 잠자리에서 책을 뒤적이는데, 명심보감의 팔반가가 나오더군요.
부모 모시기와 지식 기르기 사이에서 가지는 여덟 가지 상반된 마음을 이야기한 겁니다.
사실,
자기 자식 똥오줌은 더럽다는 생각않고 잘도 치우지만, 부모님 눈물이나 침은 쉬이 손을 못 대지 않나 싶습니다.
자식을 기를 때는 둘이건 셋이건 다 떠맡아 기르지만, 부모는 단 두 분인데 안 모시겠다고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팔반가에 나오는 이야기가 어찌 그리 옳고 바른 소리만 있던지요.


심심한데 계산이나 한번 해 볼까요?
저희 어머니 연세가 올해 일흔여섯입니다. 아마 앞으로 10년 정도 더 사시겠죠.
저는 일 년에 여섯 번 정도 집에 갑니다. 거기에 가끔 어머니가 수원으로 오시니, 일 년에 예닐곱 번 정도 어머니를 뵙니다.
이렇게 죽 간다고 해도 어머니 돌아가시기까지 남은 10년에 고작 80번밖에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그 뒤에는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도 없고,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도 없습니다.
살점 하나 없이 힘없이 밀리는 손이지만, 그런 손도 잡을 수 없고,
언제나 자식 걱정에 애처롭게 바라보시는 그 따스한 눈길도 더는 받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80번만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뒤에는 그저 제사상에 음식 차리고, 가끔 노래방에서 사모곡이나 칠갑산을 부르면서 짠한 눈물을 흘리는 게 다겠죠.
그거 말고는 살아 있는 자식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런 생각이 드니 어머니가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바로 해남으로 달려간 겁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포근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얼굴을 보면 그 '약발'이 한 달은 갑니다.
이제 한 달 동안 저는 아프지도 않을 겁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저는 춥지도 않을 겁니다.
어머니가 불어 넣어주신 기가 있으니까요. ^^*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보태기)
며칠 전 제가 읽었던 책은 최영록 님이 쓰신 '나는 휴머니스트다'입니다.
그 책 132쪽부터 136쪽에 명심보감 팔반가가 나옵니다.
아래에 옮깁니다.


幼兒或罵我하면 我心覺歡喜하고 父母嗔怒我하면 我心反不甘하니
一喜歡하고 一不甘하니 待兒待父心何懸고
勸君今日逢親怒어든 也應將親作兒看라
어린 자식 어쩌다 나에게 대들면 내 마음에 기쁨이 느껴지지만 부모님이 나에게 화를 내시면 내 마음 되레 언짢아지네. 한 쪽은 기쁘고 한 쪽은 언짢으니 자식과 부모님 대하는 마음이 어찌 이리 다를까. 자네에게 권하노니 부모님이 화를 내시면 부모님을 자식으로 바꾸어 보게.


兒曹는 出千言하되 君聽常不厭하고 父母는 一開口하면 便道多閑管이라
非閑管親掛牽이라 皓首白頭에 多諳諫이라
勸君敬奉老人言하고 莫敎乳口爭長短하라
자식들이 천 마디나 말을 하여도 자네는 늘 듣기 좋아하지만 부모님이 어쩌다가 한 마디 하시면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쏘아붙이네. 참견이 아니라 걱정이 되어 그러시는 걸 모르는가. 흰머리 되도록 아는 것이 오죽이나 많겠는가. 아무리 무식한 부모라도 자식에게 해줄 말과 교훈은 산과 바다를 훌쩍 넘는다네. 자네여. 어른 말씀 공경하여 받들게. 그 젖내 나는 입으로 어찌 길고 짦음을 다툰단 말인가.


乳兒尿糞穢는 君心에 無厭忌로되 老親涕唾零에 反有憎嫌意니라
六尺軀來何處요 父精母血成汝體라 勸君敬待老來人하라 壯時爲爾簕骨蔽니라
새끼들 똥오줌은 하나도 더럽지 않으면서 늙은 부모 눈물이나 침은 어찌 그리 미워하고 싫어하는가. 자네 몸뚱아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한번 생각해보게.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에서 온 것 아닌가. 자네,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게. 젊으실 때 자네를 위해 살과 뼈가 다 닳았지 않았는가.


看君晨入市하여 買餠又買餻하니 少聞供父母하고 多說供兒曹라
親來啖兒先飽하니 子心이 不比親心好라
勸君多出買餠錢하여 供養白頭光陰少하라
자네가 새벽시장에서 밀가루떡과 쌀떡을 사는 걸 보았네. 부모님께 드린다는 말은 들리지 않과 오직 자식들에게 준다는 말만 들었네. 부모님 드시기 전에 자식 먼저 배부르니 자식만 생각하지 부모님 생각 하나도 없네. 자네여, 떡살 돈 많이 내어 사실 날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 공양하소.


市間賣樂肆에 惟有肥兒丸하고 來有壯親者하니 何故兩般看고
兒亦病親亦病에 醫兒不比醫親症이라
割股라도 還是親的肉이니 勸君亟保雙親命하라
시장길목 약국에서는 자식 살찌울 약은 있어도 부모님 튼튼하게 할 약은 없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이도 병들고 부모 역시 병이 들었을때 아이의 병을 고치는 것은 부모의 병을 고치는 것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다리를 베더라도 그것은 도로 부모의 살이니, 자네에게 권한다. 빨리 부모 목숨을 안전하게 보호하라.


富貴엔 養親易로되 親常有來安하고 貧賤엔 養兒難하되
兒不受饑寒이라 一條心兩路條爲路에 爲兒終不如爲父라
勸君養親을 如養兒하고 凡事를 莫推家不富하라
부귀하면 부모님 모시기는 쉽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다네. 가난하면 자식을 기르기가 어렵지만 자식을 굶기거나 떨게 하지는 않을 걸세. 마음은 한 갈래인데, 두 갈래 길이 나있네. 자식을 위하는 마음, 부모님에 비할 손가. 자네여. 부모님 봉양하길 아이 기르듯 하여 가난해서 못한다고 핑계대지 말게.


養親엔 只有二人이로되 常與兄弟爭하고 養兒엔 誰十人이나
君皆獨自任이라 兒飽煖親常問하되 父母饑寒不在心이라
勸君養親을 須竭力하라 當初衣食이 被君侵이니라
부모님 봉양은 다만 두 분 뿐인데도 언제나 안모시겠다며 형제끼리 싸우지 않는가. 자식을 기를 때는 열 명이 되더라도 자네 홀로 그 자식들 모두 떠맡지 않던가. 자네 자식이 배부른지 따뜻한지는 늘 물어보지만, 부모님이 주리는지 추우신지는 마음에 없네. 자네여, 부모님 봉양함에 힘을 다하라. 자네를 기르시느라 옷과 밥을 빼앗겼잖은가.


親有十分慈하되 君不念其恩하고 兒有一分孝하되 君就揚其名이라
待親暗待兒明하니 誰識高堂養子心하고 勸君漫信兒曹孝하라
兒親子在君身이니라
부모님의 사랑은 한가득이건만 자네는 그 은혜 생각지 않네. 자식이 조금만 효도를 하여도 자네는 나아가 그 이름을 자랑하네. 부모님 대할 때는 어두우면서 자식을 대할 때는 밝으니 어버이가 자식을 기르는 마음을 누가 알 것인가. 자네에게 권하노니 부질없이 아이들의 효도를 믿지 마시게. 그대는 결국 아이들의 어버이도 되고 또한 부모의 자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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