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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06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이상한 병]
저는 병이 하나 있습니다. 한 5년쯤 전에 걸린 것 같은데 이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도집니다. 책을 볼 때도 도지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도지고, 텔레비전 볼 때도 도지고, 술을 먹을 때도 도집니다. 증상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찌 보면 한 가지 증상입니다.
이 병이 무서운(?) 것은 그 전염성 때문입니다. 전염성이 강해 제 아내도 걸렸고,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감염됐습니다. 이제는 네 살배기 제 딸내미에게까지......
어제도 책을 볼 때 그 병이 도지더군요. 증상을 설명드릴 테니 무슨 병인지 좀 알려주세요.
어제는 을지연습 때문에 상황실에서 밤을 고스란히 새웠습니다. 자정이 넘으니 수없이 쏟아지던 상황도 좀 잦아들더군요. 눈치를 보며 슬슬 가져갔던 책을 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소설책인 '뿌리 깊은 나무'라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책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이상한 것만 눈에 보이는 겁니다. 또 병이 도진 거죠.
제 병의 증상은 이렇습니다. 책을 읽을 때, '침전에 드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라는 월을 읽으면, 발자국은 소리가 나지 않는데...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발걸음 소리'인데...
'땅 바닥에 뭔가를 끄적거렸다.'라는 월을 읽으면, 끄적거리는 게 아니라 끼적거리는 건데...
'누룽지를 후루룩 마셨다'는 월을 보면, 누룽지는 딱딱해서 후루룩 마실 수 없는데... 눌은밥을 후루룩 마셨을 텐데...
이렇게 책을 읽을 때 내용은 뒷전이고, 맞춤법 틀린 곳만 눈에 확 들어옵니다. 저는 내용에 푹 빠지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병일까요?
텔레비전 볼 때는 자막 틀린 게 눈에 확 들어오고, 술 먹을 때는 술병에 붙은 상표에 있는 틀린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병이죠?
요즘은 제 딸내미도, "아빠, 이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죠? 그쵸?"라고 합니다. 딸내미도 증세가 심각합니다. 아마 곧 두 살배기 아들에게까지 전염될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누구 이 병의 이름을 알면 좀 알려주세요. 치료방법도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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