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7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그때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공동으로 주신 우리말 지킴이 지정을 받으면서 드렸던 인사말씀입니다.
[지킴이 인사말]
안녕하세요.
방금 우리 말글 지킴이가 된 성제훈입니다. 저는 농촌진흥청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국립국어원에 학예연구사가 있듯이, 저는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는 농업연구사입니다. 어찌 보면 국어, 우리말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제가 우리 말글 지킴이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배우가 상을 받으면서 "감독님과 배우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서 저는 맛있게 먹기만 했는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제가 딱 그 꼴입니다. 제가 아침마다 편지를 보내기는 하지만, 국어학자들이 만든 문법을 책에서 따오고, 문법에 맞게 쓴 보기를 사전에서 따와서 편지를 씁니다. 다만, 편지에 제 식구 이야기나 일터이야기를 버무려 보낼 뿐입니다. 그러니 남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서 제가 맛있게 먹은 것뿐이죠.
또, 시상 자리에서 자주 듣는 말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고맙게 받겠습니다... 뭐 이런 말입니다. 이 말도 지금 저에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농업연구자가 농업기술이나 농업 상식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알리고자 우리말 공부를 시작했고, 그것을 주위 분들과 나누고 있을 뿐인데 이런 큰 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큰 상을 받았고, 앞으로도 꾸준히 하라는 격려와 다독거림일 수밖에요. 고맙습니다.
요즘을 흔히 정보화 사회라고 합니다. 몇 십 년 전에는 산업화 사회라고 했죠. 그러나 이것은 고작 100년 전입니다. 그 이전에는 농경 사회였습니다. 우리 조상도 수천수만 년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농업에는 우리 선조의 얼과 넋이 녹아 있습니다. 농업의 중요성을 꼭 먹을거리를 만드는 데서만 찾으면 안 됩니다. 우리 문화의 보물창고가 바로 농업입니다. 마침 제가 농업을 하고 있기에, 농업 속에 서려 있는 우리 조상의 숨결과 얼, 넋을 찾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우리말 편지를 보내면서 우리말, 우리글, 우리 문화를 찾아 알리는데 힘쓰겠습니다.
끝으로, 오늘 이 자리는, 저에게 큰 영광이자 기쁨이지만, 한편 무척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부담은 사랑하는 제 아내와 함께 짊어져 반으로 나누고, 기쁨은 제 아들딸과 함께 나눠 몇 배로 뻥튀기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