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7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조류인플루엔자 살처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우리말편지를 쉬려고 했는데, 하도 안타까운 소식이 있어서 또 편지를 쓰게 되네요. 경기도 안성 닭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또 나왔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농가의 어려움도 클 테고, 죄없이 죽어야 하는 닭들도 불쌍하고......
정부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농장의 닭 13만 3천 마리와 반경 3km 이내 28개 농가의 가금류 10만 7천여 마리를 살처분하고 반경 10km 이내 가금류와 달걀 등 생산물의 이동을 통제한다."라고 합니다.
오늘은 살처분 이야기 좀 해 볼게요. 죄없이 죽어가는 동물을 생각하면서...
이미 감 잡으셨겠지만 '살처분'이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음 뉴스에서 살처분을 뒤져보니, 3,001개의 기사가 나오네요.
이 '살처분'은 죽일 살(殺 ) 자와 "처리하여 치움"이라는 뜻의 처분을 합친 낱말입니다. 게다가 처분은 處分(しょぶん[쇼붕])이라는 일본 낱말에서 왔습니다. 굳이 뜻풀이를 하자면 "죽여 없앰" 정도 되겠죠.
정부에서 먼저 썼는지 언론에서 먼저 썼는지는 모르지만 살처분은 좀 껄끄러운 낱말입니다.
중앙일보에서는 '살처분'이란 말보다는 '도살 매립' '도살 소각' 따위로 풀어쓰는 게 좋겠다고 하고,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542383 농림부에서는 '강제 폐기'로 바꾸자는 법안을 내 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도 맘에 안 듭니다. 그냥 '죽여 없앰'이라고 쓰면 안 되나요? 살처분이나 도살 매립, 도살 소각, 강제 폐기...... 뭐가 다르죠?
바로 이런 경우, 우리말에 없는 낱말을 만들어야 하는 이런 경우에, 정부와 언론이 신중해야 합니다. '노견' 대신 '어깨길'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갓길'을 찾는 데 더 힘을 써야 합니다.
학자들이 머리 맞대고 알맞은 낱말을 찾거나 만들어야겠지만, 저라면, '묻어 없앰'이나 '죽여 없앰'을 쓰겠습니다.
좀 다른 말이지만, 대부분의 의대에는 동물 위령비가 있습니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만들면서 실험용으로 쓴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만든 비입니다.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죽어간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기술이라도 발전시켰죠. 이번에 조류인플루엔자가 왔다고 그 둘레 몇 km 안에 산다는 까닭만으로 죽어간 닭은......
저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니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 만이라도 죄없이 죽어간 동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말123
보태기) 1. 수를 적을 때는 '만(萬)' 단위로 띄어 씁니다. 보기)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12억 3456만 7898 그래서 '10만 7천여 마리'라고 10만과 7천여를 띄어서 썼씁니다.
2. Avian influenza의 우리말은 조류독감, 가금인플루엔자, 조류인플루엔자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2004년 8월 농림부에서 '조류인플루엔자'로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