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8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범털과 개털]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제주도에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 와서 조금 있다 10시 비행기로 돌아갑니다. 어제는 제 일터에서 범털 모임을 했습니다. 저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범털 이야기나 좀 할게요.
먼저 연구직 이야기를 좀 할게요. 국가 연구직은 연구사와 연구관 두 직급밖에 없습니다. 연구사는 행정직으로 치면 7급 정도 되고, 연구관은 5급 정도 됩니다. 보통 연구사를 15-20년 정도 하면 연구관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직은 보통 박사 학위를 받고 오기 때문에 30대 중반에 들어오는데, 50이 넘어서야 겨우 연구관을 바라보게 되니... 우리나라 과학자 대우가 이렇습니다. 쩝...^^*
그래서 연구사는 개털이고, 연구관은 범털입니다. 개털은 별 볼일 없다는 것이고, 이에 견줘 범털은 호랑이 털이니 꽤 쓸 만한 거죠.
이랬던 것을, 저희가 말뜻을 바꿔버렸습니다. 연구관님들이야 이미 승진하셨으니 '개털'하시고 범털은 불쌍한 우리에게 양보해 주시라고... 그래서 어제 저희가 범털 모임을 한 겁니다. 개털 연구관님들은 일터에서 늦게까지 일하시고...
'개털'이라는 낱말은 다 아시죠? 개의 털, 사람 몸의 가는 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일이나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별짓을 다 해 봤지만 모두가 개털이었다처럼 씁니다. 또, 개털은 죄수들의 은어로, 돈이나 뒷줄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같은 개털은 몸으로 때우면서 징역 사는 수밖에 없지...처럼 쓰죠.
'범털'은 마땅히 호랑이 털이겠죠? 안타깝게도 국어사전에 범털의 뜻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죄수들의 은어로, 돈 많고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를 이르는 말입니다.
개털에는 뜻이 여러 가지지만 범털에는 뜻이 딱 한 가지뿐입니다. "돈 많고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를 이르는 말"이라니... 저희는 돈 없는 박사 죄수가 아닌지......
비록 저희가 어제 범털 모임을 하기는 했지만, 낱말 뜻을 알고 나니 좀 찜찜하네요. ^^* 모임 이름을 바꾸자고 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