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8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개발과 계발]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어제 일요일 아침에 잠깐 텔레비전을 봤습니다. 왜 제 눈에는 꼭 틀리는 것만 보이는지...
8:26, MBC에서 '같은 춤도 저렇게 틀릴 수가'라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틀리다와 다르다를 왜 저리도 가르지 못하나 싶습니다. 다행히 8:45에는 '예스러움이 묻어나는'이라고 했습니다. '옛스러움'이라고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텔레비전만 이런 실수를 하는 게 아닙니다. 지난 토요일에 오랜만에 제 이야기를 보내드렸는데, 거기에 또 실수가 있었네요. '베개'를 '베게'로 썼습니다. "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를 괴는 물건"은 '베개'입니다.
'개'는 거의 모든 움직씨(동사)에 붙어 그러한 사람, 사물, 연장이라는 뜻을 더합니다. 오줌싸개, 코흘리개, 병따개, 덮개, 지우개, 날개 따위가 그렇습니다. '게'는 움직씨(동사) 지다, 집다 따위에만 붙어 이름씨(명사)를 만듭니다.
중세국어에서는 '개'나 '게'를 붙여 이름씨(명사)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거의 '개'만 쓰고 있습니다.
학자들 말씀으로는 예전에는 베게/베개, 집게/집개가 같이 쓰였으나, 요즘은 베개, 집게가 더 자주 쓰여 표준말로 굳어진 거라고 합니다. 어쨌든 "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를 괴는 물건"은 '베게'가 아니라 '베개'입니다.
'개발서적'에서 '개발'과 '계발'의 다른 점에 말씀이 많으시네요. 먼저 사전을 보면, 계발(啓發)은 지능이나 정신을 깨우쳐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개발(開發)도 (지식, 기술, 능력 등을) 더 나은 상태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 말이 그 말 같죠?
흔히들, 지적이고 정신적인 대상에 '계발'을 쓰고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에 '개발'을 쓴다고 가르시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가릅니다. '계발'은 '계몽'을 떠올려 "잠재된, 숨어 있던 것을 찾아내 드러나게 해서 일깨워준다"고 이해하고, '개발'은 '개척'을 떠올려 "이미 존재하는 상태를 새로운 더 나은 방향으로 열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이렇게 가릅니다. '개발'과 '계발' 모두 어떤 상태를 개선해 나간다는 공통된 뜻이 있지만, 무엇을 '계발'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은 잠재되어 있어야 하지만 '개발'에는 이러한 전제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개발'은 단지 상태를 개선해 나간다는 뜻이지만 '계발'은 잠재되어 있는 속성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뜻이 있다고 풉니다. 곧, '능력 계발'은 잠재된 능력을 발전시킨다는 뜻이고, '능력 개발'은 잠재된 능력은 없지만 실력을 키워 발달하게 한다는 뜻이 되는 거죠.
토요일에 저는 '개발'을 썼습니다. 잠재된 깜냥은 없지만 실력을 키워 발달하게 하고 싶어서... ^^*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