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두절개]
안녕하세요.
월요일입니다. 이번 주도 많이 웃으시길 빕니다. 복이 와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합니다. ^^*
어제 일요일 오전 9:38, KBS2에서 '마늘 갯수'라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한 개씩 낱으로 셀 수 있는 물건의 수효는 '갯수'가 아니라 '개수'입니다. 그 직전에는 '제 1회'라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수사 앞에 붙어 "그 숫자에 해당하는 차례"를 뜻하는 '제(第)'는 앞가지(접두사)이므로 뒷말과 붙여 써야 바릅니다. 제1회, 제2회라고 써야 바릅니다.
지난 7월 1일부터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데요. 직원이 200명 가까이 되다 보니 기획실장이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네요. 각종 회의에, 쏟아지는 공문과 보고자료, 전자우편... 정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다행히 예전부터 기획실에 계시던 분들이 워낙 일을 잘하시는 분들이라서 별 탈 없이 넘기고는 있습니다.
우리말에 '두절개'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두 절로 얻어먹으러 다니던 개가 두 곳에서 모두 밥을 얻어먹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해 나가다가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절개 같다."고 하면, 돌보아 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로 미루는 바람에 도리어 하나도 도움을 못 받게 됨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사람이 마음씨가 굳지 못하여 늘 갈팡질팡하다가 마침내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말로도 씁니다. 자주 듣는 두 마리 토끼를 쫓지 마라나 한우물을 파라는 교훈과 비슷한 뜻이라고 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연구하겠다고 연구소에 들어와서 살다가, 행정과 기획을 배우겠다고 잠시 본청에 들어가서 살고, 그곳에서 승진해서 나와 이제는 하고 싶은 연구 좀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기획실장이라는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연구도 하고 싶고, 기획실장도 잘해야 하고...
두절개가 되지 않도록 지금은 기획실장 자리에만 온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연구는 잠시 접어두고...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