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9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공공언어는 쉬워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자 방송사회자인 정재환 님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공공언어는 쉬워야 한다!
불필요한 외래어·외국어 남발… 우리말 순수성 잃고 더 어려워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소득 수준에 따라 부동산대출액을 제한하는 DTI, 즉 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은행권에서 제2금융권으로 확대 시행된다고 한다. 잘 들어보니 소득을 기준으로 부동산을 구입할 때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한다는 얘기인 것 같다. 문제는 '총부채상환비율'이라고 하면 되는데 DTI라는 말을 꼭 앞에 갖다 붙인다는 점이다.
LTV는 만기 10년 이하 또는 만기 10년 초과ㆍ담보가액 6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현행 60%이내인 LTV를 50%이내로 강화한단다. 역시 문제는 LTV이다. LTV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해줄 때 담보물의 가격에 대비하여 인정해주는 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즉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이다. 이것을 50%로 강화한다는 것은 앞으로는 돈을 덜 빌려주겠다는 얘기이다.
글쓴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총부채상환비율 규제 확대나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든가 그르다든가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주장할 것도 없다.
문제는 뉴스를 전하는 기자의 보도 태도이다. DTI라고 먼저 말하고 나서 즉 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확대된다고 말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DTI로 운을 뗄 필요 없이 그냥 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확대된다고 하면 되고, LTV를 언급할 것 없이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이라고 하면 된다.
총부채상환비율과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이라는 말을 줄여 쓰고 싶은 심리가 작동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라면 '총상비'라든가 '대출인비' 하는 식으로 약어를 만들어 써야 한다. 그런데 이 두 말은 약어를 만들기 어려울 것 같다. '총상비', '대출인비'라고 했을 때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DTI와 LTV를 쓰는 것일까? 하지만 DTI와 LTV는 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DTI'라고 하고 다시 '즉 총부채상환비율'이라고 말하는 식의 보도 태도는 말하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불필요한 외래어 남발은 우리말의 순수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 다소 복잡하고 장황한 설명이 됐지만 좀 길어도 그냥 총부채상환비율과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이라고 해야 쉽다. 방송 뉴스뿐만 아니라 신문 보도도 마찬가지다. DTI와 LTV는 이제 파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공공언어의 바람직한 상을 정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말 다듬기인데, 일상에서 빈번하게 쓰고 있는 외국어와 외래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다. 뒤늦게 그런 걸 왜 하느냐고 힐난하는 분도 있고 이미 외국어와 외래어가 퍼질 대로 다 퍼졌는데 다듬은 말이 보급이 되겠느냐고 걱정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 백번 낫다. 또한 언중은 우리말 사용의 주체로서 국립국어원의 노고에 격려하고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협력이다. 네티즌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었지만 누리꾼을 방송과 신문에서 보급한 것처럼 핫이슈 대신 '주요쟁점'을, 팝업창 대신 알림창을, 멘토 대신 인생길잡이를, 가십거리 대신 입방아거리를 쓰기 바란다.
563돌 한글날 경축사를 통해 정운찬 총리는 우리말글을 지키고 가꿔나가는데 정부도 온 힘을 다하겠다면서 공공기관의 잘못된 언어사용부터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공공기관의 잘못된 언어사용에는 그랜드 바겐, 원샷딜, 녹색IT, 잡 셰어링, 시장 프렌들리 같은 말도 포함될 것이다. 과연 정 총리가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이 글은 '경인일보-수요광장' 에 실렸습니다.>
정재환(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 방송사회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