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안쫑잡다]
안녕하세요.
지난주는 일주일 내내 감사를 받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관의 기획실장으로서 온몸으로 감사를 받았습니다. ^^* 다음 주에 보완감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우리말에 '안쫑잡다'는 말이 있습니다. '안쫑'이라는 낱말은 우리는 쓰지 않으나 북한에서는 "마음속으로 종잡는 짐작이나 대중"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쫑잡다'는 낱말은 사전에 있어 "마음속에 품어 두다, 겉가량으로 헤아리다."라는 뜻으로 씁니다. 쉽게 풀면 "마음속으로 대충 헤아리다"는 뜻이 됩니다.
이 안쫑잡다를 안쪽이 있는 마음을 잡는다고 생각해서 '안쪽잡다'라고 쓰시는 분을 봤습니다. 그러나 표준어 규정에 보면,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뜻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가운데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쪽잡다'를 버리고 '안쫑잡다'를 표준어로 삼았습니다.
두 개 가운데 하나만을 표준어를 잡는 것은 복수 표준어와 대립하는 처리인데,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려면 그 발음 차이가 이론적으로 설명되든가, 두 형태가 비등하게 널리 쓰이든가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음에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게 되면, 국어를 풍부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때 하나만 표준어로 봅니다.
감사를 받으면서, 감사관이 요청한 자료를 다 내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자료를 안 내주는 것도 안 될 말이고... 감사관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목적으로 이 자료를 내라고 하는지를 안쫑잡아 적당한 선에서 자료를 내줍니다. 제가 그렇게 감사를 받았더니, 감사가 끝날무렵 한 감사관이 "수감 참 잘하시네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세상 참... 감사를 받으면서 감사관에게 칭찬을 듣기는 처음입니다. ^^*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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