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24] 우리말) 그게 희귀병이라고요?

조회 수 10486 추천 수 122 2006.08.24 09:27:32
안녕하세요.

어제 제가 걸린 병을 여쭤봤더니 많은 분이 걱정(?)을 해 주시네요.
그 병은 쉽게 고칠 수 없는 난치병이라는 분도 계시고,
희귀병이니 잘 지키라는 분도 계시고...
오늘도 이어서 병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SBS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장애와 희귀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아와 가난 때문에 아이의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정에 그들에게 필요한 전문가 그룹을 연계하여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게 그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입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게 '희귀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환자에게 '희귀병'이라고 하면 그건 환자를 우롱하는 겁니다.

'희귀'는 드물 희(稀) 자에 귀할 귀(貴) 자를 써서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는 뜻입니다.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표 같은 게 희귀한 것이죠.
그럴 때 쓰는 단어인 '희귀'를 써서 '희귀병'이라고 하면,
"세상에 별로 없는 귀한 병"이라는 단어가 돼버립니다.
아무리 귀하기로서니 병까지 귀하겠어요?

백 보 천 보 양보해서 의사가 연구목적으로 세상에 별로 없는 어떤 병을 찾는다면
그건 희귀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치료약도 없고 치료방법도 모르는 병에 걸린 사람에게
희귀병에 걸렸다고 하면 그게 아픈 사람을 우롱하고 조롱하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굳이 그런 단어를 만들고 싶으면 '희소병'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겁니다.
'희소'는
드물 희(稀) 자에 적을 소(少) 자를 써서
"매우 드물고 적음"이라는 뜻이므로 '희소병'은 말이 되죠.

보건복지부는 "저소득층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업일 겁니다.

저소득층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지원 확대

바로 이런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국가기관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희귀병이라뇨...
그렇지 않아도 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별로 없는 귀한 병"을 가졌다고요?
그렇게 귀한 병이라면 힘없는 국민은 안 가져도 좋으니 보건복지부나 많이 가져가시죠.
희귀병은 보건복지부에서 다 가져가시고,
우리 국민에게는
'희소·난치성질환'이 아니라
'드물고 낫기 어려운 병' 치료나 많이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말123 ^^*

보태기)
1.
사람의 성씨가 드물 때도 '희귀 성씨'가 아니라
'희소 성씨'나 '희성'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드문 성'이라고 하면 더 좋고요. ^^*

2.
희귀병, 희소병은 모두 아직 국어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단어입니다.
난치병, 불치병은 국어사전에 올라있습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정안수/정한수]

며칠 전에 오랜만에 노래방에 갔습니다.
적당히 곡차 기운이 올라오니 저절로 흥이 나더군요. ^^*
저는 노래방에 가면 꼭 부르는 노래가
‘엽전 열닷 냥’과 ‘전선야곡’입니다.
요즘 신곡은 잘 몰라요. ^^*

전선야곡을 부를 때마다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노랫말은 맞춤법이 틀리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이 그대로 따라 하는데….
노사연이 부른,
만남에 나오는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도 그렇고...

전선야곡은,
6·25전쟁 당시 발표된 진중가요죠.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하고 시작하는 노래 있잖아요. ^^*
그 노래 2절에 보면,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 쓸어안고 싶었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전쟁에 나간 자식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겠죠.

여기서 ‘정안수’ 대신
‘정화수’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옆에 국어사전 있으면
‘정안수’나 ‘정한수’를 찾아보세요.
모두 ‘정화수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조왕에게 가족들의 평안을 빌면서 정성을 들이거나, 약을 달이는 데 쓰기 위해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은
‘정안수’나 ‘정한수’가 아니라 ‘정화수(井華水)’입니다.

저에게 곧 중요한 일이 있는데,
어머니께 전화 드려 정화수 떠 놓고 빌어달라고 부탁해야겠네요. ^^*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성제훈 박사님의 [우리말123] 게시판 입니다. id: moneyplan 2006-08-14 143629
공지 맞춤법 검사기^^ id: moneyplan 2008-11-18 149285
16 [2006/08/31] 우리말) 제 얼굴이 그을렸어요 id: moneyplan 2006-08-31 9700
15 [2006/08/30] 우리말) 휘뚜루마뚜루 id: moneyplan 2006-08-30 10002
14 [2006/08/29] 우리말) 농촌진흥청에 들러주세요 id: moneyplan 2006-08-29 9746
13 [2006/08/28] 우리말) 정답을 맞히고 답안지와 맞춰라 id: moneyplan 2006-08-28 9679
12 [2006/08/27] 우리말) 무좀 때문에 발가락이 자꾸... id: moneyplan 2006-08-28 9538
11 [2006/08/26] 우리말) 공중화장실 ‘여성 변기’ 늘린다 id: moneyplan 2006-08-28 10890
10 [2006/08/24] 우리말) 우표 붙여 편지 부쳤습니다 id: moneyplan 2006-08-25 10175
» [2006/08/24] 우리말) 그게 희귀병이라고요? id: moneyplan 2006-08-24 10486
8 [2006/08/23] 우리말) 이상한 병 id: moneyplan 2006-08-23 10067
7 [2006/08/22] 우리말) 잔치는 벌리는 게 아니라 벌이는 겁니다 id: moneyplan 2006-08-22 10374
6 [2006/08/21] 우리말) 저는 농촌진흥청에서 일합니다. id: moneyplan 2006-08-21 10297
5 [2006/08/18] 우리말) '당분간'이 아니라 '얼마 동안' id: moneyplan 2006-08-18 17064
4 [2006/08/17] 우리말) 연루보다는 관련이, 관련보다는 버물다가 낫습니다 id: moneyplan 2006-08-17 10580
3 [2006/08/16] 우리말) 고참의 구타 id: moneyplan 2006-08-17 10640
2 [2006/08/15] 우리말) 갈마들다 id: moneyplan 2006-08-17 10532
1 [2006/08/14] 우리말) 주니 id: moneyplan 2006-08-14 14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