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6] 우리말) '이력'은 순 우리말입니다

조회 수 8171 추천 수 64 2007.02.27 02:06:05
안녕하세요.

어제 일요일
오전 9:31 MBC에서 'ℓ'와 '20㎖'라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미터법에 의한 부피의 단위"인 리터(liter)의 기호는
ℓ이 아니라 l과 L이 바릅니다.

이 단위는 100년도 넘은 1879년 국제도량형위원회에서 채택했고,
소문자 l과 같이 쓸 수 있는 대문자 L이라는 단위는
l이 숫자 1과 헷갈릴 수 있어서 이를 피하고자
1979년에 국제도량형위원회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도 무려 28년 전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도 ℓ라고 나와 있습니다.
MBC에서 내 보낸 자막은 'ℓ과 20㎖'이 아니라
'l과 20ml'나 'L과 20mL'로 써야 바릅니다.

이쯤 되면
뭔가 한소리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무책임한 방송사도 꼬집고,
정신 못차리는 국립국어원도 한번 짚고 넘어가야 속이 시원할 텐데,
그냥 넘어가려니 영 거시기 하네요... 쩝... ^^*

오늘 이야기 시작합니다.

저희 일터에 다음 달부터 새로운 직원이 한 분 오십니다.
며칠 전에 이력서를 들고 오셨더군요.
아직 얼굴도 잘 모르는 그분을 반기는 뜻으로 '이력'을 좀 알아볼게요.

우리가 흔히 아는 이력(履歷)은 "지금까지 거쳐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을 뜻합니다.
그것을 적어 놓은 게 이력서죠.

한자 履歷 말고 우리말 '이력'도 있습니다.
"많이 겪어 보아서 얻게 된 슬기."를 뜻합니다.
이력이 나다/이력이 붙다/그 젊은이도 이 장사엔 웬만큼 이력을 지녔을 것이다처럼 씁니다.
한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 우리말입니다.

이력과 비슷한 낱말로 '이골'이 있습니다.
"아주 길이 들어서 몸에 푹 밴 버릇"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골이 나다'고 하면,
"어떤 일에 완전히 길이 들어서 아주 익숙해지다. 또는 진절머리가 나도록 그 일을 오랫동안 많이 해 오다."는 뜻이 되는 거죠.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이 겪어 얻는 슬기"를 뜻하는 '이력'은 순 우리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순 우리말 이력에 履歷이라는 한자를 달아놨습니다.
다행히 한글학회에서 만든 우리말큰사전에는 순 우리말 이력과 한자 履歷을 갈라놨습니다.

MBC 엄기영 뉴스 진행자 말대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저도 한마디 하자면,
이런 글을 쓰면서 비꼬지 않고 그냥 지나가자니,
"참으로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___^*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겠습니다]

요즘 여기저기 세미나에 갈 기회가 많네요.
하나라도 더 주워들으려면 열심히 쫓아다녀야죠.

저는, 세미나 발표장에 가면
발표자가 발표하는 내용도 새겨듣지만,
발표자가 하는 말도 꼼꼼히 챙겨 듣습니다.
그게 다 공부니까요.

발표장에서 흔히 듣는 말 중,
'-겠습니다.'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전통가옥이 되겠습니다. 저 내용은 기본 계획이 되겠습니다.
심지어 사회자도,
화장실은 이쪽이 되겠습니다. 이분은 우리 회사 사장님이 되시겠습니다. 입장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참 듣기 거북합니다.

'-겠-'은,
"내일쯤 비가 내리겠습니다"에서처럼 확실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정'을 나타낼 때나,
"첫눈이 오면 가겠습니다"처럼 말하는 사람의 의지를 나타낼 때 씁니다.
이 밖에는 '겠'을 쓰지 않으시는 게 깔끔합니다.

'이 그림은 전통가옥이 되겠습니다'는 '이 그림은 전통가옥입니다'로,
'저 내용은 기본 계획이 되겠습니다'는 '저 내용은 기본 계획입니다'로,
'화장실은 이쪽이 되겠습니다'는 '화장실은 이쪽입니다'로,
'이분은 우리 회사 사장님이 되시겠습니다'는 '이분은 우리 회사 사장님입니다'로,
'입장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는 '들어와 주십시오'로 쓰시면 됩니다.
'겠'을 남용하는 말버릇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남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배울 게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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