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 만개'보다는
'여의둑길 벚꽃 활짝'이 훨씬 좋은데,
여러분은 어때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토요일이랍시고 집안 청소 좀 하고 늦게 나왔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니까요. ^^*
나오다 보니 여기저기 벚꽃이 활짝 피었네요.
마치 솜을 한 자밤씩 나뭇가지에 올려놓은 것처럼 멋있게 피었습니다.
이렇게 꽃이 활짝 핀 것을 '만개(滿開)'라고 합니다.
주로 언론에서 그렇게 떠듭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됩니다.
특히 언론은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활짝 핌'이라고 다듬어 놓은 낱말을 왜 굳이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이 쓰는 낱말 하나하나는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한 겁니다.
언론의 힘만 믿고 언죽번죽 떠들면 안 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죠.
권한이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법입니다.
저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 만개'보다는
'여의둑길 벚꽃 활짝'이 훨씬 좋은데,
여러분은 어때요?
며칠 전에
어떤 책을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 소개하는 글을 하나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래에 붙입니다.
나는 일본말을 무척 싫어한다. 내가 일본말을 싫어한다고 하면 “그건 자격지심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서 세계화 시대에 일본말과 한자를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핏대를 세운다. 한 술 더 떠, 영어는 잘도 쓰면서 일본말을 싫어하는 것은 일본이 우리를 지배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똑같다. “내가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일본이 우리를 강제로 지배했고, 그 시기에 우리 민족혼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말에는 그 나라 민족 혼이 들어 있다.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우리말을 못 쓰게 하고 우리 이름을 못 쓰게 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넋을 없애고자 그랬던 것이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일본말찌꺼기를 쓴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혼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고 지금도 옳다고 생각해 꾸준히 하는 말이다.
“빠꾸와 오라이”라는 책은, 일제 강점기 이후에 태어난 글쓴이가 자기도 모르게 일본말을 쓴 것을 반성하는 책이다. 자유가 없는 교도소 에 있으면서 차분하게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가 쓴 말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동생에서 쓰는 편지 형식을 빌렸지만 자기 자신의 뼈아픈 반성과 사회를 꼬집는 날카로운 비판이 들어 있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말과 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말과 글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일본말찌꺼기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더럽혀진 체 학생들까지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일본의 더러운 영혼과 함께 사는 것이다.
글쓴이는 '언어란 것은 어차피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인접한 다른 언어로부터 끊임없이 간섭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간섭을 받더라도 주체가 올바로 서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먼저 내 안에 녹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외래어들이 나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가늠해 보고 그들의 문화와 우리 것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 이 책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직도 우리가 쓰는 일본말찌꺼기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은 우리 후손은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역사의 충고다.
일본말뿐만 아니다. 한자와 똑같은 뜻의 우리말이 있다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써야 우리의 영혼이 맑아진다. 그래야 우리 넋이 꿋꿋하게 설 수 있다.
매일 아침 엄마가 해 주신 계란찜을 먹고 야채를 많이 먹어야 건강하듯이, 이 책을 열심히 읽어 일본말이 뭔지 알아야 왜곡된 생활과 정신을 정립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중에 일본말이 얼마나 많은지를 제대로 알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아니, 아니다. 다시 하자.
날마다 엄마가 해 주신 달걀찜을 먹고 푸성귀를 많이 먹어야 튼튼하듯이, 이 책을 열심히 읽어 일본말이 뭔지 알아야 삐뚤어진 삶과 넋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우리가 쓰는 낱말 가운데 일본말이 얼마나 많은지를 제대로 아는 데 온 힘을 쏟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