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는 지금의 뒤로(과거로) 갈 때 쓰고,
'지금부터'는 지금의 앞으로(미래로) 갈 때 씁니다.
안녕하세요.
새로운 해가 떠올랐건만 제 일터 분위기는 지는 해보다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네요.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에 생긴 농촌진흥청이,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에 통일벼를 만들어 모든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했고,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 녹색혁명을 이뤄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비닐하우스 농법을 개발하여 사계절 내내 신선한 푸성귀와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있게 했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고품질 농산물을 개발하였으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생명공학 기술을 실용화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는 돼지 젖에서 항암제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지금부터가 문제입니다.
농촌진흥청이 없어지고 나면, 농촌진흥청이 민간 출연연구소로 넘어가고 나면,
농민과 농업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없고, 오로지 돈 되는 연구만 해야 합니다.
기초분야 연구는 할 수 없고, 연구비를 대 주는 기업체의 입맛에 맞는 연구만 해야 합니다.
지금도 식량 자급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몇 년 안에 우리 밥상은 몽땅 외국산 천지가 될 겁니다.
정말 지금부터가 문제입니다.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에 농촌진흥청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는 지금의 뒤로(과거로) 갈 때 쓰고,
'지금부터'는 지금의 앞으로(미래로) 갈 때 씁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요즘 며칠 우리말편지에서 제 일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몇 분이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공익적인 목적으로 보내는 우리말편지에 이용하여
사적인 욕심을 채우지 말라고...
그분들께 답장을 드렸습니다.
아래처럼...
안녕하세요.
편지 고맙습니다.
우리말 편지는 제가 우리말을 공부하면서 배운 것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제 개인이 쓰기에 가끔은 우리말과 아무 상관없는 제 식구 이야기도 쓰고 딸내미 자랑도 합니다.
제 이야기도 쓰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씁니다. 제가 보고 들은 것 가운데 꼬집고 싶은 게 있으면 꼬집고 바로잡고 싶은 게 있으면 함께 나눕니다.
아마 제가 농촌진흥청에 다니지 않았어도 농촌진흥청 폐지는 반대했을 겁니다.
이 나라 농업과 농촌이 무너지고 삶의 터전이 없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자코 있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농민들이 농사를 지면서 비싼 로열티를 내고 농사를 짓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지요?
절대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경제 논리에 밀려 농업과 농촌은 버려도 좋은 것인가요?
그 속에 있는 우리 문화와 삶의 뿌리도 한꺼번에 없어져도 좋은가요?
식량주권을 지키고자 농촌진흥청 폐지를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공청회 한번 하지 않고 밀실에서 몇 명이 선택한 잘못된 결정을 알고도 쥐 죽은 듯이 참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요?
이런 것을 알리고 싶어 제가 할 수 있는 우리말 편지에 소개한 게 그리 큰 잘못인지요.
저는 앞으로도 이런 편지를 꾸준히 쓸 겁니다.
작은 정부!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줄일 데서 줄여야죠.
7천 명 줄였다고 자랑하면 그 속을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 속을 보니 힘없는 1차 산업이고 연구입니다.
이런 것은 당연히 알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경제논리 앞세우다 망한 나라가 한둘이 아닙니다.
경제논리를 문화와 환경에 들이댔다가 얼마나 큰 피해를 봤습니까.
게다가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복구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뿌리인 농업과 농촌을 없애는 일을 두고 보라고요?
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가방끈이 길면, 그 긴 가방끈에 맞는 일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관리하는 국유특허의 54%를 농촌진흥청이 가지고 있고,
이번에 없애겠다는 국립수산과학원과 국립산림과학원이 각각 7%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없어지는 세 기관이 우리나라 국유특허의 69.5%를 갖고 있는 겁니다.
이런 기관을 없애면서 과학기술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런 편지를 꾸준히 쓸 겁니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모발]
며칠 전 시장에서 샴푸를 하나 샀습니다.
통에 붙은 광고를 보니,
‘천연원료를 써서 모발이 상하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더군요.
꼭 모발이라고 써야하나...
모발(毛髮)은
사람의 몸에 난 털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꼭 머리에 난 털인 머리카락만을 이르는 게 아닙니다.
머리카락만을 가리키는 낱말을 굳이 찾자면 두발(頭髮)이 맞겠죠.
“머리카락의 질이나 상태”를 이르는 게 ‘머릿결’이잖아요.
천연원료를 써서 머릿결이 상하지 않고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이잖아요.
그럼 당연히 ‘머릿결’을 써야죠. 왜 이런 좋은 우리말을 두고,
굳이 ‘모발’을 쓰는지...
저 같으면,
‘천연원료를 써서 모발이 상하지 않습니다.’ 대신
‘천연원료를 써서 머릿결이 고와집니다.’나,
‘천연원료를 써서 머릿결에서 윤이 납니다.’라고 쓰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우리말, 우리글을 쓰자고 하면,
어떤 분들은,
“당신은 영어도 못하고 한자도 몰라서 그런다.
한자나 영어를 쓰면 의미전달이 훨씬 잘 된다.“라고 강조하는 분이 계십니다.
경우에 따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글,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