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7] 우리말) 속는 셈 치다

조회 수 7934 추천 수 98 2009.04.07 09:32:05
'치고'는 토씨(조사)로 쓰일 때와 움직씨(동사)로 쓰일 때로 가를 수 있습니다.
토씨로 쓰일 때는 "그 전체가 예외 없이"라는 뜻과 "그중에서는 예외적으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움직씨로 쓰일 때는 뭔가를 인정하거나 가정할 때 씁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가 참 좋죠?
그렇게 햇볕은 좋은데 막상 나가보면 좀 쌀쌀하더군요.
봄치고 좀 쌀쌀합니다.

오늘은 '치고'를 알아볼게요.
처음치고, 봄치고... 속는 셈 치고...

'치고'는 토씨(조사)로 쓰일 때와 움직씨(동사)로 쓰일 때로 가를 수 있습니다.
토씨로 쓰일 때는 "그 전체가 예외 없이"라는 뜻과 "그중에서는 예외적으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토씨이므로 앞말과 붙여 씁니다.
나중에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더라, 눈이 온 날씨치고 포근하다, 남의 목숨 초개처럼 아는 사람치고 제 목숨은 천금처럼 알고 떨지 않는 사람 없다더니…처럼 씁니다.
이때는 흔히 뒤에 부정의 뜻을 더하는 낱말이 옵니다.

움직씨로 쓰일 때는 뭔가를 인정하거나 가정할 때 씁니다.
그는 내 작품을 최고로 쳤다, 나는 그의 능력을 높게 친다, 속는 셈 치고 이번에는 넘어가자, 그냥 먹은 셈 칠게요처럼 씁니다.
이때는 움직씨이므로 당연히 앞말과 띄어 써야 합니다.

밖에 벚꽃이 활짝 피었네요.
진짜입니다. 속는 셈 치고 나가보세요. ^^*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요즘 벚꽃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예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를 붙입니다.


[윤중로 벚꽃 축제]


사무실 앞에 있는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네요.

오늘은 벚꽃 이야기를 해 볼게요.

진해 벚꽃이 활짝 피었으니, 이제 곧 여의도 '윤중로 벚꽃 축제'를 한다는 말이 나오겠네요.




<제가 대충 아는 내용>

1. 벚꽃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대만이다.

2. 지금 일본의 벚꽃은 제주도에서 자라난 토종 왕벚꽃을 가져가서 개량한 것이다.

3. 우리나라 꽃이 무궁화라는 것은 대통령령으로 나와있지만, 일본 나라꽃이 벚꽃이라는 것은 일본 법률에 없다.

(따라서 아름다운 벚꽃을 보고 일본 나라꽃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싫어하거나 미워하실 필요는 없으실듯...)




<제가 확실히 아는 내용>

'윤중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둑길입니다.

윤중로(輪中路)는 윤중제(輪中堤)에서 온 말입니다.

'제'는 방죽 제(堤) 자 이므로 윤중제는 윤중방죽이라는 말이 되겠죠.

이제 윤중을 알아보죠.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는 '윤중'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일본사전을 보죠.

輪中은 わじゅう[와쥬우]로 '에도시대 물난리를 막기 위하여 하나 또는 여러 마을이 둑으로 싸여 물막이 협동체를 이룬 것'이라고 나와있군요.

輪中堤를 찾아보니, わじゅうてい[와쥬떼이]로 '강 가운데 있는 섬 주위를 둘러싸게 축조한 제방'이라고 나와있네요.




이렇게 윤중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일본말입니다.

그걸 가져다 우리는 '윤중'이라고 그냥 읽은 겁니다.

거기에 길을 내 놓고 윤중로(輪中路)라 하고...




제가 알기에,

산에서 내려오는 강어귀에 마을이 있거나 하여 강물이 불면 그 물에 마을이 잠기므로 마을 둘레에 둑을 쌓아 물을 막는데,

그 둑이 바로 '방죽'입니다.




따라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둑길은 '방죽'에 난 '길'입니다.

일본말인 윤중로가 아니죠.

제가 알기에는, 1986년 서울시가 윤중제를 '여의방죽'으로 고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길은 윤중로가 아니라 여의방죽길이겠죠.

그런데 왜 방송에서는 여전히 여의방죽이나 여의방죽길, 여의둑길로 안 쓰고 윤중로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낱말 몇 개를 소개합니다.

방죽 :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둑.

둑 : 높은 길을 내려고 쌓은 언덕.

둔치 : 물가의 언덕.

섬둑 : 섬의 둘레를 둘러쌓은 둑.




보태기)

1. 저는 우리나라를 사랑합니다. 오늘 편지의 주제는 벚꽃을 사랑하고, 벚꽃을 보고 즐기자는 게 아니라, '윤중'이나 '윤중로'를 쓰지 말자는 겁니다.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윤중제(輪中堤)가 실려있는데,

'강섬의 둘레를 둘러서 쌓은 제방.'이라 풀어놓고, '둘레 둑', '섬둑'으로 바꿨습니다.




3. 벚꽃 축제에서,

축제(祝祭, しゅくさい[슉사이])도 일본어투 말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은 '잔치'입니다.




4. 어제 인터넷 뉴스에서 보니,

우리나라 대단위 벚꽃 나무들이 일본의 교묘한 문화침탈의 일환으로 심어졌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258&PCode=0007&DataID=200604031553000162











[만발? 활짝 핌!]




오늘도 토요일이랍시고 집안 청소 좀 하고 늦게 나왔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니까요. ^^*







나오다 보니 여기저기 벚꽃이 활짝 피었네요.

마치 솜을 한 자밤씩 나뭇가지에 올려놓은 것처럼 멋있게 피었습니다.







이렇게 꽃이 활짝 핀 것을 '만개(滿開)'라고 합니다.

주로 언론에서 그렇게 떠듭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됩니다.

특히 언론은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활짝 핌'이라고 다듬어 놓은 낱말을 왜 굳이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이 쓰는 낱말 하나하나는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한 겁니다.

언론의 힘만 믿고 언죽번죽 떠들면 안 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죠.

권한이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법입니다.




저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 만개'보다는

'여의둑길 벚꽃 활짝'이 훨씬 좋은데,

여러분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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