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3] 우리말) 비명과 환호성

조회 수 7475 추천 수 4 2011.04.13 13:09:54
'비명'은 슬피 우는 소리이므로 '즐겁다'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뻐서 크게 부르짖는 소리는 '환호성'입니다.
그러나 '즐거운 환호성'이라고 하면 뜻이 겹치게 되므로
그냥 '기뻐서 소리친다'나 '환호성을 지른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전에 이제 막 세상 빛을 본 딸내미와 병원에 잠시 다녀오느라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1. 오늘 아침 7:20에 SBS뉴스에서 "즐거운 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명'은 슬피 우는 소리이므로 '즐겁다'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뻐서 크게 부르짖는 소리는 '환호성'입니다.
그러나 '즐거운 환호성'이라고 하면 뜻이 겹치게 되므로
그냥 '기뻐서 소리친다'나 '환호성을 지른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역설적으로 '즐거운 비명'이라고 써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시에서 쓴다면 모를까요. ^^*

2. 경향신문에 재밌는(?) 기사가 났네요.
저는 주말에는 한복을 자주 입는데요, 저 같은 사람은 신라호텔에 들어갈 수 없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식당도 있나 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131057311&code=940100

3. 어제 보내드린 편지를 보시고 다신 댓글 가운데 하나를 같이 읽어보고자 합니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는 영어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언어생활의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요즘 KBS 개그콘서트를 보면 '남하당 박영진 대표'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렇게 여자들이 할 거 다 하고 놀 거 다 놀면...도대체 소는 누가 키울 거야~소는!!!"
저는 한국사회의 영어 광풍이 이 개그와 꼭 같다고 봅니다.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고, 모든 논문도 영어로 쓰고, 모든 회사 면접도 영어로 한다면...도대체 한국어는 누가 쓸겁니까?"
우리의 자랑스런 한글이,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가 영어에 비해 2류, 3류 언어입니까?
영어에 대한 이 정신나간 집착과 편중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기원한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합니다.
그래서 업무상 하루종일 영어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긴 하지만,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는 '마인드'라고 할까요...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우리처럼 '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문화와 개인(Individual)을 중시하는 서구 문화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영어로 강의를 백날 해봐야 절대로 '영어식 마인드'를 갖지 못합니다.
아무리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해도 우리가 미국인이 될 수 없듯이.
또 금발의 파란 눈 백인이 아무리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잘 한다 해도, 뼛속까지 한국인이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DNA는 서로 다르니까요...우리가 우리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혀(Mother Tongue)는 오로지 한국인의 피일 뿐이니까요.
한국어로 학술회의도 하고 논문도 쓰고 국제회의도 열리는 날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 좋을 글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전에 일터에 나오지 않고 점심때 일터에 나오니까 늘 앉던 제 자리가 왠지 자리가 낯섭니다.
그리고
한복 입은 사람이 식당에 들어갈 수 없고, 영어로만 모든 수업을 하는 우리나라가 왠지 낯섭니다.
저만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일가견보다는 한가락이 낫다]

오늘도 날씨가 참 좋죠?
이 좋은 날씨처럼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빕니다.

지난 주말에는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전주 음식이 맛있더군요.

한 식당에서 몇몇 분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와서
건너편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인사를 좀 하자는 겁니다.
제가 관심 있어 할 분들이고,
다들 특정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당혹스럽더군요.
제가 같이 저녁을 먹고 있는 분들도 만만한 분들이 아니었지만,
점잖은 자리에 와서 저를 끌고 가려는 그 사람의 행동도 참...
더군다나 ‘일가견’ 있다는 사람들이 곁눈질로 저를 보고 있더군요. 오는지 안 오는지...
쩝...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끝까지 가지 않았지만,
기분이 영 거시기 하더군요.

오늘은 ‘일가견’을 좀 짚어보죠.
一家見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견해”를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올라있는 말입니다.

근데 이 말은 일본어에서 왔습니다.
일본말이 말이 최근에 우리 사전에 오른 겁니다.
일본말로 “독특한 주장이나 학설”이라는 의밉니다.
‘어느 한 방면, 어떤 문제에 대해 갖춘 일정한 체계의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주장이나 학설 또는 그 견해’라는 뜻으로 쓰이는 거죠.
一家見이라 쓰기도 하고,
一見識이라 쓰고 いち-けんしき[이찌갱시끼]라고고도 읽습니다.

하루빨리 바다 건너 일본으로 싸 보내야 할 말입니다.
“그 친구 어떤 일에 일가견이 있다”나,
“그 친구 어떤 일에 일견식이 있다”라는 말보다는,
“그 친구 어떤 일에 한가락한다는군”이라는 말이 더 좋지 않나요?

제 생각에,
‘일가견’이나 ‘일견식’보다는 ‘한가락’이 훨씬 더 낫습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일가견’과 ‘일견식’은 올림말로,
‘한가락’은 속어로 올라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 만든 국어사전이죠?

5월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달에는 결혼하시는 분들도 참 많네요.
모두 행복하게 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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