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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렸던 우리말편지입니다.
[벼농사]
비가 온 뒤라 날씨가 꽤 시원해졌죠?
어제 오전에 논에 나가봤더니 벌써 이삭이 팼더군요.
아시는 것처럼 저는 농사짓고 삽니다.
농사하면 뭐니뭐니해도 벼농사죠.
오늘은 벼농사와 관련된 우리말 몇 가지를 소개드릴게요.
맨 밑에는 어제 아침에 논에 나가서 찍은 벼 꽃 사진을 붙입니다.
벼 꽃 보셨어요?
벼도 꽃이 피냐고요?
벼농사의 시작은 ‘못자리’입니다.
못자리는 “볍씨를 뿌려 모를 기르는 곳”을 말하고,
“논에 볍씨를 뿌리는 일”도 못자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옮겨심기 위하여 가꾸어 기른 어린 벼”를 ‘모’라고 합니다.
못자리 밖에 난 모는 ‘벌모’라고 하고,
나중에 쓰려고 더 키우는 모는 ‘덧모’라고 하며,
못자리에 난 어린 잡풀은 ‘도사리’라고 합니다.
모내기를 위해 모판에서 모를 캐내는 일을 ‘모찌기’라고 하고,
이 모를 잡고 심기 좋게 서너 움큼씩 묶은 단은 ‘모춤’이라고 하죠.
당연히 ‘모내기’는 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는 일을 말하죠.
요즘은 이앙기라는 기계로 이런 일을 다 하지만...
‘모잡이’는 모낼 때 모만 심는 일꾼이고,
모춤을 별러 돌리는 일은 맡은 일꾼은 ‘모쟁이’라고 하며,
모를 심을 때 줄을 맞추기 위하여 쓰는, 일정한 간격마다 표시를 한 줄을 ‘못줄’이라고
하고,
못줄을 잡는 일꾼을 ‘줄꾼’이나 ‘줄잡이’라고 하죠.
일을 하다보면 새참을 먹게 됩니다.
“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먹는 음식”을 ‘새참’이라고 하고 ‘참밥’이라고도 하죠.
또, “농부가 끼니 밖에 때때로 먹는 음식”을 ‘곁두리’라고 합니다.
논밭에서 김을 맬 때 집에서 가져다 먹는 밥은 ‘기승밥’이라고 합니다.
밥을 먹기 전에 첫 술은 떼서 귀신에게 바치는데,
“민간 신앙에서,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무당이 굿을 할 때,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는 일”을 ‘고수레’라고 합니다.
모를 옮겨 심은 지 4~5일쯤 지나서 모가 완전히 뿌리를 내려 파랗게 생기를 띠는
일
또는 그런 상태를 ‘사름’이라고 합니다.
모가 흙맛을 본 거죠.
모내기 후,
논에 난 잡초를 ‘김’이라고 하고,
이 김을 뽑는 일을 ‘김매기’나 ‘논매기’라고 합니다.
특히, 논에 난 피를 뽑는 일은 ‘피사리’라고 하죠.
벼 이삭이 나오려고 대가 불룩해지는 현상을 ‘배동’이라고 하고,
그 시기인 벼가 알이 들 무렵은 ‘배동바지’라고 합니다.
곡식의 이삭이 패어 나오는 일 또는 그 이삭은 ‘패암’이라고 합니다.
요즘이 그런 철로,
어제 논에 나가봤더니,
패암이 고르고 좋더군요.
배동바지와 패암 때 논에 대는 물을 ‘꽃물’이라고 하죠.
익은 벼를 거두어 타작하는 일은 ‘볏가을’이라고 합니다.
곡식의 이삭을 털어 거두는 일은 ‘타작’, ‘마당질’, ‘바심’이라고 하는데,
아직 덜 익은 벼를 ‘풋나락’이라고 하고(남부지방 사투리)
이런 풋나락을 지레 베어 떨거나 훑는 일을 ‘풋바심’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풋바심한 곡식으로 가을걷이 때까지 먹을거리를 대어 먹는 일을 ‘초련’이라고 하죠.
전라남도 해남 사람을 흔히,
‘풋나락’이라고 놀리죠?
그 이유는, 해남사람들이 못 살 때,
익지도 않은 나락을 베어다 잘 익은 나락이라고 팔았다는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을에,
농작물이 잘되고 못된 상황을 ‘작황’이나 ‘됨새’라고 합니다.
그 해에 새로 난 쌀을 ‘햅쌀’이라 합니다.
벼를 수확하면 벼 속에 수분이 많아 어느 정도 말려서 보관해야 하는데,
벼를 쌀로 만들기 위해, 곧, 찧기 위하여
말리는 벼를 ‘우케’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말씀하신,
“비 듣는다. 우케 걷어라”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아요?
오늘은 글이 좀 길었네요.
오랜만에 농사 이야기를 쓰다 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그래도 정겨운 우리말을 보니 옛날 생각나고 좋죠?
오늘 저녁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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