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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 입니다.
[운전자가 실랑이를 벌인다]
어제는 아는 분과 함께, 밭고랑에서 전어를 구워먹었습니다.
대가리 속에 깨가 서 말이나 있고,
그 냄새를 맡으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
역시 맛있더군요.
아는 분이 농장으로 초대해서 갔었는데,
농장이 이천이라서 좀 멀더군요.
일요일이면 당연히 자야하는 늦잠도 못 자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죠.
가는 중에 차가 밀려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교통방송을 들으니,
제가 가는 길 앞에서 접촉사고가 나, 운전자들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빨리 가서 전어를 구워 먹어야 하는데... 이렇게 길이 밀리니...
흔히,
교통방송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어디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운전자들이 길 위에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입니다.
여기서 ‘실랑이’는 잘못 쓰인 말입니다.
‘승강이’가 옳습니다.
‘승강이(昇降-)’는,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소한 일로 너와 승강이할 시간이 없다처럼 쓰죠.
‘실랑이’는,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을 말합니다.
‘실랑이를 당하다/빚쟁이들한테 실랑이를 받는 어머니가 불쌍하다’처럼 씁니다.
차량 흐름을 방해하는 두 운전자의 짓거리는
‘승강이질’이지 ‘실랑이질’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상대편이 잘못했다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것이지,
공연히 남을 못살게 구는 짓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실랑이’라는 말은 사전에 있어도 ‘실랭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실래이’는 ‘실랑이’의 경상도 지방 사투리입니다.
‘승강이’라는 말은 사전에 있어도 ‘승갱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번 주는
자기주장만 옳다고 남과 승강이하는 일도 없고,
뜬금없이 다른 사람에게서 실랑이 당하는 일도 없는,
멋진 한 주를 보내시길 빕니다.
보태기)
실랑이는 본래 과거장에 쓰던 '신래(新來)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과거 합격자를 발표되면 호명 받는 사람은 예복을 갖춰 입고 합격 증서를 타러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바로 이 호명이 '신래위'입니다.
이때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합격한 사람을 붙잡고 얼굴에 먹칠을 하거나,
옷을 찢으며 합격자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 ‘실랑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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