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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아침 KBS 뉴스 자막에 '평년보다
열흘 정도 빠른 추석'이라고 나왔습니다.
KBS에서 보기에 추석이 달리기를 참 잘하나 봅니다. '이른 한가위'가 아니라 '빠른 추석'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오늘 새벽에 목욕탕에 다녀왔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 있으면 왜 그리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할 일도 생각나고,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도 생각나고...
목욕탕을 나오면서 예전에 과장님으로 모셨던 분들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뵌 지 너무
오래되어서 보고싶다고... ^^*
오래전에 보고 최근에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할 때는,
본 지 오래되었다가 맞을까요, 못 본 지 오래되었다가 맞을까요?
많은 분이 못 본 지 오래되었다, 고기 못 먹은 지 오래되었다처럼 쓰시지만,
본 지 오래되었다와 먹은 지 오래되었다가 바릅니다.
석 달 전에 고기를 먹고 그 뒤로 먹지 않는 것을 뜻하므로,
당연히 고기 먹은 지 오래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고기 못 먹은 것은 두 달 전에도 먹지 않았고, 어제도 먹지 않은 것이므로 오래되었다고는
못하죠.
헷갈리신가요? ^^*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 김형배 박사님이 쓰시고 한국행정연구원 행정포커스에 실린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공공언어, 이대로 둘 것인가-1
마이크로크레딧, 바우처, 마더세이프, 드림스타트, 스마트워크센터,
클린에너지, 스마트그리드, 그린카, 워킹스쿨버스, 스쿨폴리스,
통화스왑, 식품nara, SESE 나라, qwl 밸리, Me First 운동, U-Health, u-medical, Heli-EMS······.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이 말들은 행정기관에서 정책을 펴는 데 사용하는 정책용어들이다.
이러한 말들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행정이라도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행정용어나 정책용어 때문에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크다는 것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국립국어원이 지난해에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바로는 귀책사유, 봉입, 불비, 익일 등과 같은 어려운 행정용어로 1년에 약 170억 원, 맘프러너, 마이크로크레딧, 바우처 등과 같은 낯선 외국어나 외래어 정책명으로 1년에 약 114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어려운 말을 그대로 둔다면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뿐더러 날마다 생산되는 낯선 용어들로
국민과 소통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좋은 정책이 제대로 펼쳐지기 어려울 것이다.
몇 해 전에 국민은행이 상호를 KB로 일제히 바꿨다. 자식이 매달 보내주는 용돈을 은행에서 찾아 쓰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국민은행을 찾느라 몇
시간을 헤맸다는 일화는 공공언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SH, LH, NH······
이런 공기업 영어 명칭에 대해 국민 71.1%는 이 기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들어서는 ‘농협’이 ‘NH’로 바꾸더니
그것도 모자라 간판마다 ‘NongHyup’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였다. 영문자로 표시해야 기업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카센터, 영양센터, 이삿짐센터, 클린센터, 서비스센터, 고객센터, 문화센터, 자활센터, 교수학습지원센터, 고시센터’ 등 ‘센터’라는 말이 이렇게 널리 쓰이니까 ‘동사무소’라는 이름을 버리고 ‘주민센터’로 바꾸어
행정기관 이름에까지 낯선 외래어·외국어가 자리를 잡았다. 행정기관에서 이러하니 ‘노숙인’이나
‘부랑인’을 ‘홈리스’라는 말로 바꾸어 써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 S-Class 아파트 주차장은 ‘Parking’으로 표시되어
있고 출입구에는 ‘IN’과 ‘OUT’이 버젓이 새겨져
있다. 그 옆에 있는 ‘내’ 아파트의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하는 곳에는 ‘Recycle center’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
집값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 아파트는 한글 ‘내’가 아니라 로마자 고딕체로 쓴
‘LH’이다. ‘LH’는
한글 ‘내’로 읽기에 딱 좋은 모양새이다. 아파트 이름을 어렵고 낯선 외국어로 짓는 까닭이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우스개가 있는데 ‘내’ 아파트는 시어머니가 쉽게 찾아갈 수 있을 테니 조만간 아파트 이름을 바꿀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이름을 영문자 약자로 앞다투어 고치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외국인도 알아볼 수 없고 우리 국민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표기를 자꾸만 쓰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 서양식
이름을 은근히 선호하면서 우리말의 가치를 낮게 매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잔치-연회-파티, 아내-처-와이프, 소젖-우유-밀크, 알몸-나체-누드’ 등의 단어에 우리가 어떤 가치를 매기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 퍼진 서양말투성이 이름을 두고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이런 이름을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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