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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제에 이어 '인문학 콘서트 2'에 있는 최준식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님의 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갑수 : 한글의 독창성이나 과학성, 사용상의
편의성 등 여러 가지 장점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데, 최 교수께서는 개인적으로 한글의 어떤
점이 정말 우수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최준식 : 제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한글이 어떤 점에서 훌륭하냐고 물어보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아요. 그럼, 제가 묻죠. 한글이 왜 과학적이냐. 그러면 모두 입을 다물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말로는 우리 한글이 훌륭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무자다, 그러면서도 정작 왜 훌륭하고 왜 우수한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게 도대체 웬일입니까?
한글을 ‘아침글자’라고 한다는 군요. 누구나 아침부터 배우면 저녁에 자기 이름 정도는
쓸 수 있다는 것인데, 한글이 그만큼 배우기 쉽다는 얘기겠죠.
게다가 한글은 모음 열 개와 자음 열네 개를 조합해서 11,000가지 이상의 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요. 일본어의 300가지음, 중국어의 400가지 음과 비교하면 한글의 음성적 표현 능력은
월등합니다. 얼마나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언어입니까?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데,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정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놀라는
점은 문자와 발음의 상곽ㄴ관계가 어느 문자보다도 높다는 데 있습니다. 샘슨 교수는 한글이 세계
유링릐 진정한 음소문자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하나의 부호가 하나의 소리만을 대표하는 문자 체계는
전 세계적으로 한글밖에 없어요.
한글의 정교하고 절묘한 구성을 예를 들어볼까요? 한글의 자음, ㄱ-ㅋ-ㄱㄱ, ㄷ-ㅌ-ㄷㄷ, ㅈ-ㅊ-ㅈㅈ, ㅂ-ㅍ-ㅂㅂ, ㅅ-ㅅㅅ을 각각 살펴보면 기본 글자에 한두 개 획을 더해서
된소리, 거센소리를 표기합니다. 모양이 비슷하니까, 어떤 소리에서 어떤 자질이 더해졌는지 금세 알 수 있잖아요. 이
체계가 얼마나 고학적인지는 영어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우리말의 ㄷ, ㅌ에 해당하는 영어의 d, t를 보면 둘 사이에 아무런 관련성이
보이지 않잖아요.
제가 자주 드는 예입니다만, 영어의 city를
빨리 발음하면 ‘씨리’이렇게 되잖아요. 이처럼 t와 l, r은 서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gentleman을 발음하면 ‘제늘맨’이렇게 되거든요. t가 n의 영향을 받아서, 혹은
n이 탈락되고 t가 n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렇게 t, n, r, l은 모두 같은 어군에 속하는데, 다른 언어도 그렇지만, 영어에서는 글자와 글자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어요, 모두 제각각이죠. 그런데 세종대왕은
그런 점까지 고려하셔서 혀끝소리 ㄴ, ㄷ, ㄷㄷ, ㄹ, ㅅ, ㅅㅅ, ㅌ을 같은 그룹에 모아놓으셨어요. 이것을 본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아, 이건 사람이 만든 문자가 아니다, 이건 과학의
정수다, 이렇게 경악하는 거죠.
모음은 더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그 복잡한 모음 체계를 점 하나 작대기 두
개로 다 해결했잖아요. 이런 것을 보고 전 세계인이 세종대왕은 인간이 아니다, 천재 중의 천재라고 말하는 거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한글 체계의 근간에는 하늘, 땅, 사람의 우주적인 철학이 깔렸잖아요. 이런 점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가 인정하는 거죠.
(437~4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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