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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홍길동 선생님 혜존]
이제 곧 졸업 철이군요.
며칠 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몇 개 받았습니다.
남자에게 군대 갈래 박사학위 논문 쓸래 하고 물으면 다들 군대를 열 번이라도 간다고 하고,
여자에게 애 낳을래 박사학위 논문 쓸래 하고 물어도 차라리 애를 몇 명 더 낳고 말겠다고 할 만큼 힘들다는 박사학위 논문.
80평생 살면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보람찬 일 중의 하나가 박사학위 논문 쓴 거겠죠.
논문을 받아보면,
거지반 이렇게 씌어있습니다.
‘홍길동 선생님 혜존
OOO 드림‘
오늘은 혜존을 좀 짚어볼게요.
일단, 이 혜존은 일본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그 지긋지긋한 일본말입니다.
국어사전에서 혜존(惠存)을 찾아보면,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 따위를 남에게 드릴
때에 상대편의 이름 아래에 쓰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말로 ‘혜감(惠鑑)’을
올려놨죠.
혜감도,
“‘잘 보아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을 남에게 보낼 때에 상대편
이름 밑에 쓰는 말.”로 ‘혜존’과 같은 뜻입니다.
혜존과 혜감을 가지고 ‘삐딱선’을 좀 타 보면,
‘혜존’은 “훌륭한 사람이 쓴, 이 훌륭한 서적을 잘 간직해 달라”는 뜻으로,
권위 있는 학자가 제자나 후배들에게 자기가 쓴 책을 줄 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내가 쓴 이 훌륭한 책을 보고, 너희들이 한 수 배우도록 하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교수님이나 선배님들께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드리면서,
굳이 한자를 써서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으면,
(꼭 그렇게 해야만 격이 맞다고 생각하신다면...)
‘OOO 선생님
OOO 근정(謹呈)’이라고 쓰시면 됩니다.
그러나 저는,
‘○○○ 선생님께 ○○○ 드립니다.’
‘○○○ 선생님께 삼가 드립니다’고 쓰는 게 더 맘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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