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7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저는 절대 똥기지 않을 겁니다]
오늘 아침 KBS 뉴스에서 7시 7분쯤 조류독감 기사를 전하면서 화면에 '3Km 내 매몰'이라고 썼네요. 거리 단위는 Km나 KM가 아니라 km입니다.
오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는 농촌진흥청 본청에서 일합니다. 요즘 제가 하는 일은 농업연구상 심사 관리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받는 상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상이 바로 이 농업연구상입니다. 그 상을 추천받아 심사위원들이 심사하실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제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마땅히 심사 중이라 아무런 말씀도 못 드리죠. 슬쩍 귀띔해 달라는 분도 있고, 자기에게만 알려달라는 분도 있고, 대충 상, 중, 하에서 어디인지만 알려달라는 분도 있고...
오늘은 그런 낱말을 좀 소개해드릴게요. 잘 아시는 귀띔이 있습니다. 상대편이 눈치로 알아차리게 슬그머니 알려주는 것이죠. 아마도 귀를 뜨이게 해 준다는 뜻일 겁니다. 이를 한자로는 내시(內示)라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알리기 전에 몰래 알려 주는 것이죠.
재밌는 낱말은 뚱기다와 똥기다입니다. '뚱기다'는 '팽팽한 줄 따위를 퉁기어 움직이게 하다.'는 뜻도 있지만, '눈치 채도록 슬며시 일깨워 주다.'는 뜻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중요한 정보를 뚱겨 주다/네가 그렇게 뚱겨 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처럼 씁니다.
'똥기다'는 '모르는 사실을 깨달아 알도록 암시를 주다.'는 뜻입니다. 그는 눈치가 빨라서 두어 마디만 똥겨도 금세 알아차린다처럼 씁니다.
뚱기다와 똥기다. 뜻이 비슷하죠? 좀더 따져보면, 똥기다는 모르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고, 뚱기다는 슬며시 일깨워주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지금 다루는 연구상 결과를 그 누가 물어도 귀띔해주거나, 내시를 주거나, 똥기거나, 뚱기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일이라면 아예 전화도 하지 마세요. ^^*
보태기) '상대편이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미리 슬그머니 일깨워 줌'이라는 이름씨는 귀뜸이 아니라 귀띔입니다. 귀뜸은 아마도... 귀에다가 뜸을 뜨는 것을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낱말도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
답장) 내시? 내 평생 처음으로 들어 보는 말이라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지요. 있더군요. 님이 사전에 없는 말을 썼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 문득 이게 왜 국어사전에 올라 있나 생각해 보고는 중국말은 어떤가 하고 한중사전(고려대)을 찾아보았지요. '귀띔'을 보니 '內示'는 없고 '告知, 示意, 暗示, 口信, 透信'이 있더군요. 이상하다 싶어 '내시'를 찾아보았죠. 올라 있지 않더군요. 정말 이상하지요? 인터넷 다음 중국어사전을 보니, 올림말 '내시'는 있는데 중국말은 '暗示'라고 하는군요. 이 낱말[암시]은 우리도 쓰는 거죠. '귀띔'을 보니, '告知, 提示, 暗示, 示意'라고 뒤쳤는데 여기도 '內示'는 없군요. 그러고 보면 '內示'는 중국말이 아닌가 봅니다. 그럼 일본말은 어떤가 하고 한일사전(두산동아)을 찾아보았지요. 올림말 '귀띔'에 '內示'라는 건 보이지 않는군요. 그럼 '내시'는? 드디어 찾았습니다.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內示'는 일본 한자말이었습니다그려. 일본 한자말이 어찌하여 우리말 사전에 버젓이 올라 있는가 하는 까닭이야 님도 잘 아시겠고... 그런데... 왜 님이 굳이 이런 한자말을 알려주는지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말기척 : 무슨 일을 하거나 어디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리는 일'이나 알려주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