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늘 우리말 편지를 쓰기에 앞서 어떤 글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합니다. 쓰고 싶은 내용이 많아도 논리적으로 펴나가다 보면 빼거나 줄여야 할 때도 잦습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준비하지만, 막상 써놓고 보면 맘에 안 듭니다.
오늘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12명이나 있습니다.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실종자 가족의 아픔을 잊고, 우리 잘못을 조금씩 잊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합니다. 월드컵은 세계인의 잔치라고 합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잉글랜드 경기를 방송 3사에서 같이 생중계했고, 곧이어 일본 경기도 방송 3사에서 같이 생중계했습니다. 전파를 낭비하고, 돈을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시선이 한쪽으로만 몰리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식구들과 함께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눕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를 오늘치 우리말 편지 밥으로 떠올렸습니다. 이제 어떻게 비빌지만 남았습니다. 자 한번 비벼볼까요? ^^*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는 오랜만에 밖에 나가지 않고 애들과 살을 비비며 재밌게 놀았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애들과 방에서 뒹굴다 보니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전을 방송국 세 군데서 생중계를 하고 있더군요. 돈 낭비를 떠나서 국민들의 시선이 너무 한곳으로 모여질까 걱정됩니다. 우리는 고작 두 달 전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재앙을 겪었고, 아직도 12명이나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 바로 뒤에는 많은 사람이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겪으면 안 된다고 다짐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경제도 살려야 하고, 세계인들의 잔치도 함께해야 하지만, 우리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다짐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겁니다.
앞에서 '애들과 살을 비비며 재밌게 놀았다'고 했고, '어떻게 비빌지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두 물체를 맞대어 문지르다.", "어떤 재료에 다른 재료를 넣어 한데 버무리다."는 뜻을 지닌 낱말은 '비비다'입니다.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옷소매는 박박 비벼야 때가 빠진다, 나물을 넣고 밥을 비빈다, 밥을 고추장에 비벼서 먹다처럼 씁니다.
'비비다'를 '부비다'고 쓰는 것을 자주 봅니다만, '부비다'는 낱말은 없습니다.
우리는 식구와 함께 언제든 살을 비비며 정을 나눌 수도 있고, 밖에 나가 맛있는 비빔밥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뺨을 만지며 비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겁니다. 자주 웃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남들도 생각하고 배려하며 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