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7] 우리말) 에누리와 차별

조회 수 5796 추천 수 0 2016.04.29 19:14:58

‘에누리’는 원래 ‘물건을 팔 때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것’을 뜻했다. 일종의 ‘바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비가 내리네요. ^^*

오늘은 동아일보에 나온 기사 하나를 함께 읽고자 합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60426/77777494/1
'에누리'와 '차별', 손진호 어문기자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 코미디언 서영춘 씨가 부른 ‘서울구경’의 한 구절이다. 노랫말 속 ‘시골영감’이 기차 요금을 깎아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대목이다. 그러다 기차가 떠나가려 하자 깜짝 놀라 “깎지 않고 다 줄 테니 나 좀 태워줘”라고 매달릴 때는 웃음보가 터진다. 

‘에누리’는 원래 ‘물건을 팔 때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것’을 뜻했다. 일종의 ‘바가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인 ‘값을 깎는 일’로 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우리 사전은 두 가지를 모두 표제어로 올려놓고 있다. 

그런 에누리마저 요즘은 한자말 ‘할인(割引)’과 외래어 ‘세일’ ‘디스카운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더욱이 순우리말 에누리를 일본말로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으니….

‘차별’이란 낱말도 에누리와 닮았다. 성 차별, 인종 차별 등 차별이 들어가서 좋은 말은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입길에 올리는 걸 꺼리는 금기어가 됐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 ‘상품의 차별화’니, ‘자신만의 차별화된 제작 방식’ 등에서 보듯 차별을 권장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즉, 마케팅 전략 차원이나 몸값을 올리려면 차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깨소금 맛’과 ‘고소하다’도 이중적 표현이다. 깨소금은 볶은 참깨를 빻은 데다 소금을 넣은 것으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입길에 오르내리는 ‘깨소금 맛’은 그게 아니다. 남의 불행을 은밀히 즐긴다는 뜻으로 변해버렸다. ‘고소하다’도 마찬가지. 언중은 볶은 깨나 참기름 따위에서 나는 맛이나 냄새라는 뜻 외에 ‘미운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속이 시원하고 재미있다’는 뜻으로도 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감정이지만, 없어져도 좋을 낱말이다.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뜻하는 ‘이판사판’도 마찬가지.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불교에서 왔다. ‘이판’은 속세를 떠나 수도에만 전념하는 일을, ‘사판’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일컫는다. 이판 일을 하는 스님이 이판승, 사판 일을 하는 스님은 사판승이었다. 한데 언중은 이 둘을 합친 이판사판을 전혀 다른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어의 의미와 용법은 언중이 규정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뜻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단어와 접하면 그렇게 만든 언중마저 놀란다. 

고맙습니다.

참,
이렇게 제가 봐서 함께 읽고 싶은 기사는
기사 원문을 여기에 쓰고, 어디서 따왔는지 그 사이트도 잇습니다.
저는 돈을 벌고자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서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은데,
혹시 이렇게 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나요?
누구 아시면 답변 좀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아래는 2009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궁글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생겨서 같이 일하던 동료 몇 분이 그곳으로 옮기셨습니다.

며칠 전까지 같이 일했던 사람이 옆에 없으니 왠지 허우룩합니다.

(허우룩하다 : 마음이 텅 빈 것 같이 허전하고 서운하다.)



'궁글다'는 낱말이 있습니다.

착 달라붙어 있어야 할 물건이 들떠서 속이 비다는 뜻으로, 벽지가 궁글어 보기 싫다처럼 쓰이고,

단단한 물체 속의 한 부분이 텅 비다는 뜻으로도 씁니다.

농진청에서 그 사람들이 빠져나가니 여기저기 궁글어 보기 싫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지금은 궁글고 허우룩하지만

언젠가는 시설거릴 날이 있을 겁니다.

(시설거리다 : 실실 웃으면서 수다스럽게 자꾸 지껄이다.)

언제나 자주 웃으시면서 사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보태기)

오늘은 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시인 함 석 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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