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오늘도 한글문화연대 성기지 님의 글을 함께 보겠습니다.
[개판과 이판사판] 개판이라고 한다. 어떻든 난장판이 수습되지 못해서 개판으로 치닫는, 그런 불행은 없어야 하겠다. 그 어떤 벼슬에 있었든, 밝은 대낮에 훤히 드러난 치부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온 국민을 상대로 ‘이판사판이니 한번 해보자!’는 추태를 보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난장판이나 개판에서의 ‘판’은 순 우리말이지만, ‘이판사판’이라고 할 때의 ‘판’(判)은 한자에서 온 말로 전혀 다른 뜻이다. ‘이판사판’은 ‘이판’과 ‘사판’이 합쳐진 합성어인데, ‘이판’과 ‘사판’은 모두 불교에서 쓰이고 있는 말이다. ‘이판’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불도에 전념하는 일을 말하고,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스님을 ‘이판승’이라고 한다. 또 ‘사판’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말하며,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스님을 ‘사판승’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판승’이 없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어질 수 없고, ‘사판승’이 없으면 절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이판’과 ‘사판’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말이다. ‘이판’과 ‘사판’이 결합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말이 ‘이판사판’이다. 이 말은 오늘날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쓰이게 된 까닭에 대해선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면 누구나 ‘이판’과 ‘사판’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기 때문에, ‘이판사판’이라는 말에 ‘막다른 곳’, ‘막다른 궁지’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설명하는 쪽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판’ 아니면 ‘사판’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극단적 사고를 낳을 수 있고,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막다른 곳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음’이라는 극단적인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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