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1] 우리말) 염치불구하고...

조회 수 5485 추천 수 89 2006.09.21 11:09:33
안녕하세요.

어제 어떤 분이 딸내미 머리핀을 주신다기에
염치불구하고 넙죽 받기로 했습니다.
그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오늘은 '염치불구'를 알아볼게요.

흔히,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함."이라는 뜻을 말할 때 "염치불고하고 어쩌고저쩌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염치불고'가 아니라 '불고염치'라고 해야 맞습니다.
속으로 그러시죠? 어... 아닌데... 염치불구...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죠?

국어사전에 '불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니 불(不) 자와 한정할 구(拘) 자를 써서,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입니다.
몸살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다, 끝내는 도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무지를 이용해 거짓말을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질펀하게 펼쳐진 땅을...처럼 씁니다.

제 생각에, 바로 이 단어가 입에 익어
"염치를 생각할 틈도 없이"라는 뜻으로 '염치불구'를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염치불구'와 앞에서 말한 '불구'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또, '염치불구'라는 것은 아예 없는 말이고,
'염치불고'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말도 '불고염치'가 맞습니다.
국어사전에 '불고염치'는 올라있지만, 염치불고, 염치불구는 올라있지 않습니다.

불고염치(不顧廉恥)는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함"이라는 뜻입니다.
아니 불(不) 자와 돌아볼 고(顧) 자를 씁니다.
곧,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함이라는 뜻이죠.
불고염치하고 부탁하다, 불고염치하고 남의 신세를 지다처럼 씁니다.
다시 말하면,
"염치가 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므로 이를 우선 생각하지 않고"라는 완곡한 어법이 됩니다.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짚자면,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의 단어가 '불구'라고 했는데요.
이 단어는 아예 쓰지 않거나 쉬운 말로 바꿔쓰시면 좋습니다.
아니 차라리 '불구'를 쓰지 않는 게 글이 더 깨끗하고 깔끔합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는 '많이 노력했는데도'로,
'어머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는 '어머니께서 충고하셨는데도'로,
'여러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는 '여러 번 실패했지만'으로,
'영희의 아름다운 얼굴에도 불구하고'는 '영희가 얼굴이 아름다운데도'로 바꿔 쓰시면 됩니다.
없어도 되는 한자말을 넣어서 글을 더럽힐 까닭이 없잖아요.

또,
불고염치하고 부탁하다, 불고염치하고 남의 신세를 지다는,
염치없지만 부탁하다, 염치없지만 남의 신세를 지다처럼
'불고염치'를 '염치없다'로 바꿔쓰시면 됩니다.

글이 좀 복잡한데요.
정리하면,
"염치 없지만..."이라는 뜻을 말할 때는 '염치불구'가 아니라 '불고염치'라고 하는 게 맞고, 이마저도 '염치없지만'으로 바꿔 쓰시는 게 좋고,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의 '불구'는 될 수 있으면 쓰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우리말123

보태기)
이 편지 머리에서 제가 쓴,
'어제 어떤 분이 딸내미 머리핀을 주신다기에 염치불구하고 넙죽 받기로 했습니다.'는 틀린 말입니다.
'어제 어떤 분이 딸내미 머리핀을 주신다기에 불고염치 넙죽 받기로 했습니다.'나,
'어제 어떤 분이 딸내미 머리핀을 주신다기에 염치없지만 넙죽 받기로 했습니다.'가 맞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성제훈 박사님의 [우리말123] 게시판 입니다. id: moneyplan 2006-08-14 111102
공지 맞춤법 검사기^^ id: moneyplan 2008-11-18 116730
36 [2013/03/25] 우리말) 비몽사몽과 어리마리 머니북 2013-03-25 10274
35 [2007/09/04] 우리말) 상가, 상갓집, 상가집 id: moneyplan 2007-09-04 10546
34 [2011/12/07] 우리말) 질기둥이 머니북 2011-12-07 10647
33 [2016/07/15] 우리말) 안경을 쓰다/안경을 끼다 머니북 2016-07-15 11019
32 [2010/08/20] 우리말) 올림과 드림 moneybook 2010-08-20 11115
31 [2010/12/06] 우리말) '착하다'의 뜻 moneybook 2010-12-06 11347
30 [2008/01/14] 우리말) 띄어쓰기 틀린 것 몇 개 id: moneyplan 2008-01-14 11427
29 [2012/07/12] 우리말) 한글로 된 국회의원 선서문 머니북 2012-07-12 11526
28 [2015/06/01] 우리말) 우리다 머니북 2015-06-01 11905
27 [2007/02/15] 우리말) 남동풍? 동남풍? id: moneyplan 2007-02-15 11966
26 [2012/08/01] 우리말) 뭔가 야로가 있는 거 같죠? 머니북 2012-08-01 12714
25 [2012/07/19] 우리말) '갓길' 댓글 머니북 2012-07-19 12811
24 [2011/04/28] 우리말) 빙부와 빙모 moneybook 2011-04-28 12893
23 [2011/12/05] 우리말) 땐깡과 지다위 그리고... 머니북 2011-12-05 13129
22 [2012/08/28] 우리말) 초속 40미터 바람 세기 머니북 2012-08-28 13474
21 [2006/08/14] 우리말) 주니 id: moneyplan 2006-08-14 13509
20 [2013/03/06] 우리말) 개그맨, 한글 박사가 되다 방송인 정재환 머니북 2013-03-06 13957
19 [2011/11/24] 우리말) 자주 틀리는 맞춤법 머니북 2011-11-24 14057
18 [2012/08/10] 우리말) 도합과 모두 머니북 2012-08-10 15148
17 [2013/03/06] 우리말) 세꼬시는 뼈째회로 쓰는 게 좋습니다 머니북 2013-03-06 15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