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10] 우리말) 모순과 비각

조회 수 4663 추천 수 93 2007.02.12 02:54:57
안녕하세요.

토요일이라 좀 늦게 나왔습니다.

오늘도 어제 받은 편지를 하나 소개할게요.
저는 하루에 백여 통의 편지를 받는데,
그 가운데는 제가 가끔 우리말편지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저의 잘못을 꼬집어 주시는 것도 있지만,
오늘 소개해 드리는 편지처럼 조금 거시기한 것도 있습니다.

제목 : 참나~~

맞춤법이 틀려서 사람구실을 못했나?
맞춤법이 틀려서 의사소통을 못했나?
맞춤법이 틀려서 죽을죄를 지었나?
맞춤법이 틀려서 인격이 모자랐나?
맞춤법이 틀려서 애를 못 키웠나?
맞춤법이 틀려서 남에게 피해를 줬나?
맞춤법이 틀려서 학업을 못 이루었나?
자기엄마 맞춤법 틀린건 감격스럽고 용서가 되고
남이 틀리면 분수에 걸맞지 않게 우습게 여기고,,,
이보슈~~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쓰고 발음한다 해서
진정 그 사람이 당신같은 사람한테 욕을 먹어야 하는것이오?
그 억지스러운 비하 좀 이젠 그만두시는게 어떻소?
글쎄,,,
매번 느끼지만 맞춤법이야 낸들 모르겠지만
인격이 그다지 본받을 만한 사람은 못되 보이고
왠지 잘난사람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사람으로 보이오
이젠 겸손이란 단어도 좀 배워보시오  

이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쓰신 편지를 아시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말편지를 꽤 오래전부터 받아보신 것 같은데...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겸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제가,
저희 어머니 맞춤법 틀린 건 감격스럽게 보고,
남이 틀리면 분수에 걸맞지 않게 우습게 여기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하는 분에게 욕을 한 것 같지도 않고...
제 인격이 그다지 본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은 맞지만,
제가 잘난 사람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어쨌든 '이젠 겸손이란 단어도 좀 배워보시오'라고 하시니
더 겸손해지도록 힘써야겠군요.

우리말편지 보내는 것도 이런 점에서 보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늘은 모순 이야기나 할게요.
그냥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싶네요. ^^*

모순(矛盾) 아시죠?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이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이라 하고
이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 하기에,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어 보시라고 했다는 데서 나온 게 바로 모순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한 데서 나온 거죠.

이 모순과 비슷한 말이 우리말에도 있습니다.
바로 '비각'입니다. 한자가 아니라 순 우리말입니다.
사전에 나온 뜻은,
"물과 불처럼 서로 상극이 되어 용납되지 아니하는 일"을 뜻합니다.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와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이 함께 할 수 없듯이,
물과 불 또한 함께할 수 없습니다.

비각...
왠지 오늘은 그 생각이 드네요.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빠대다/삐대다]

눈이 좀 덜 내리네요.
오전에 넉가래로 실험실 앞에 있는 눈을 좀 치웠습니다.
오랜만에 내린 눈이라 많은 사람이 빠대고 다녀,
발자국이 난 곳은 눈이 굳어서 잘 밀리지 않네요.

'빠대다'는 말 아시죠?
"아무 할 일 없이 이리저리 쏘다니다."라는 뜻으로,
일정한 직업 없이 허구한 날 빠대는 것도 못할 노릇이다처럼 씁니다.
발음이 강해서 좀 어색한 감도 있지만, 순 우리말이고 표준어입니다.

'빠대다'와 발음이 비슷한 '삐대다'도 표준업니다.
"한군데 오래 눌어붙어서 끈덕지게 굴다."라는 뜻으로,
선배에게 삐대다. 하는 일 없이 남의 집에 오래 삐대고 있을 수도 없었다처럼 씁니다.
마찬가지 순 우리말이자 표준어입니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발자국이 없는 눈 위를 빠대보세요.
오랜만에 '뽀드득' 눈 밟는 소리도 들어보시고...
저는 오늘도 사무실에서 삐대다 늦게 들어갈 것 같네요.

퇴근길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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