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3] 우리말) 하루가 되기는 싫습니다

조회 수 3013 추천 수 101 2009.10.23 09:23:51
착한 사람이나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 멋진 사람은 되고 싶어도,
'즐거운 한가위'나 '즐거운 명절'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편지에서
'하루가 되기는 싫고, 그냥 행복하게 하루 보내겠다고... ^^*'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시는 분이 많으시네요.

그걸 설명하는 예전에 보낸 편지로 오늘치 우리말 편지를 갈음합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아니요. 싫은데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 받은 편지를 먼저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요즘 받는 편지 가운데,
저에게 즐거운 한가위 되라는 분이 많으십니다.
일일이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릴게요.

싫습니다.
저는 즐거운 한가위가 되기 싫습니다.
즐거운 명절 되라고요?
그것도 싫습니다.

착한 사람이나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 멋진 사람은 되고 싶어도,
'즐거운 한가위'나 '즐거운 명절'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한가위'가 사람인가요? 식물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무슨 미생물인가요?
제가 농촌진흥청에 다녀도 그런 동식물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저는 한가위를 즐겁게 보내거나, 재밌게 누릴 수는 있지만,
'즐거운 한가위'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는 영 어색한 말입니다.
굳이 따지면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되세요.'라는 명령형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영어 번역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는
'한가위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가위를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한가위 즐겁게 보내세요.'로 바꾸는 게 좋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즐거운 관람 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거운 쇼핑 되세요, 좋은 시간 되세요, 안전한 귀성길 되세요, 푸근한 한가위 되세요 따위도 모두 틀린 겁니다.
사람이 여행, 관람, 하루, 쇼핑, 시간 따위가 될 수 없잖아요.
사람이 즐겁게 여행하고, 재밌게 보고, 행복하게 보내고, 즐겁게 시장을 보는 겁니다.

좀 삐딱하게 나가볼까요?
저에게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하루'가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하루살이'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큰 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절대 '하루'나 '하루살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날'이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날파리'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거 저에게 욕한 거 맞죠?
저는 절대 '하루살이'나 '날파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살게 그냥 놔두세요. ^^*


여러분,
한가위 잘 보내시고,
한가위 잘 쇠시고,
고향 잘 다녀오시고,
한가위를 즐겁고 행복하고 푸근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보태기)
1.
삐딱하게 나간 게 좀 심했나요?
될 수 있으면 그런 말을 쓰지 말자는 저의 강한 뜻으로 받아주시길 빕니다.
인사는 고맙게 잘 받습니다.

2.
'날파리'는 '하루살이'의 사투리입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편지입니다.






[척사대회? 윷놀이]

고향 잘 다녀오셨나요?

고향에 가서 호박 가져오셨어요?
지난주에 문제로 낸,
"겉은 누렇게 익었으나 씨가 여물지 않은 호박"은 '굴퉁이'입니다.
청둥호박을 쪼개보았더니 굴퉁이더라처럼 쓰실 수 있습니다.
이런 뜻이 변해,
지금은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속은 보잘것없는 물건이나 사람."도 굴퉁이라고 합니다.
바로 저 같은 사람... ^^*

이번에 고향에 갔더니 여기저기서 윷놀이하는 곳이 많더군요.
해남군민 척사대회, 화산면 척사대회...
저는 척사가 뭔지 몰라 사전을 뒤져봤습니다.
擲柶라고 쓰고 그 뜻이 윷놀이더군요.
좋게 윷놀이하면 좋을 것을 왜 어려운 한자를 써서 擲柶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던질 척, 윷 사를 쓴 척사가 아니라 그냥 윷놀이입니다.

내친김에,
윷놀이 말이나 좀 알아볼게요.
윷가락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고 합니다.
곧, 말의 끗수를 나타내는데요.
이 도개걸윷모는 가축 이름에서 온 것입니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입니다.

이번에 윷놀이해서 돈 좀 따셨어요?

우리말12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성제훈 박사님의 [우리말123] 게시판 입니다. id: moneyplan 2006-08-14 118175
공지 맞춤법 검사기^^ id: moneyplan 2008-11-18 123732
2496 [2006/09/07] 우리말) 일본 왕실의 왕자 탄생을 축하합니다 id: moneyplan 2006-09-08 5691
2495 [2006/12/12] 우리말) 저는 절대 똥기지 않을 겁니다 id: moneyplan 2006-12-12 5690
2494 [2006/09/14] 우리말) 가을내가 아니라 가으내 id: moneyplan 2006-09-14 5651
2493 [2013/03/22] 우리말) 약 머니북 2013-03-25 5648
2492 [2006/09/21] 우리말) 염치불구하고... id: moneyplan 2006-09-21 5622
2491 [2006/10/11] 우리말) 배추 뿌리, 배추꼬랑이 id: moneyplan 2006-10-11 5621
2490 [2006/10/18] 우리말) 심술깨나 부리게 생겼다. 꽤나 고집이 세겠군 id: moneyplan 2006-10-18 5619
2489 [2006/10/22] 우리말) 심간 편하세요? id: moneyplan 2006-10-23 5606
2488 [2006/10/04] 우리말) 즐거운 추석 되세요. -> 아니요. 싫은데요. id: moneyplan 2006-10-08 5600
2487 [2006/12/18] 우리말) 살찌다와 살지다 id: moneyplan 2006-12-18 5596
2486 [2006/10/10] 우리말) 밥먹고 삽시다 id: moneyplan 2006-10-10 5573
2485 [2006/09/24] 우리말) 산문 모음집 id: moneyplan 2006-09-25 5573
2484 [2011/10/10] 우리말) 어리숙하다와 어수룩하다 모두 맞습니다 머니북 2011-10-10 5572
2483 [2006/12/03] 우리말) 선친 잘 계시냐? id: moneyplan 2006-12-04 5572
2482 [2006/12/14] 우리말) 어제는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id: moneyplan 2006-12-14 5529
2481 [2011/01/04] 우리말) 잔주름/잗주름 moneybook 2011-01-04 5520
2480 [2007/01/26] 우리말) 족치다 id: moneyplan 2007-01-28 5498
2479 [2017/11/15] 우리말) ‘오’가 ‘우’로 바뀐 말들 머니북 2017-11-16 5494
2478 [2006/09/16] 우리말) 어머니 글을 또 보내드립니다 id: moneyplan 2006-09-18 5487
2477 [2006/11/22] 우리말) 메꾸다 >> 메우다 id: moneyplan 2006-11-22 5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