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3] 우리말) 누굴 호구로 아나...

조회 수 3771 추천 수 103 2009.11.03 14:31:39
따라서,
'네가 날 호구로 보냐?'라는 말은
네가 날 휴짓조각으로 보냐?
네가 날 물로 보냐?
날 물렁하게 보냐?... 뭐 이런 뜻이 됩니다.


안녕하세요.

일터에 나오다 보니 턱이 덜덜 떨리네요.
많이 춥죠?

아니요.
추위나 더위의 정도를 나타내는 어찌씨(부사)는 '상당히' 나 '꽤'를 써야 바릅니다.
많이 추운 게 아니라, 무척 춥고, 꽤 춥고, 상당히 추운 겁니다.

요즘 일이 곰비임비 연거푸 일어나는데다, 이것저것 쌓이기까지 하네요.
웬만해서는 일을 겁내는 제가 아닌데, 요즘은 일이 무섭습니다. ^^*

일이 많을 때 저는 일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쭈! 이게 날 물로 아나. 내가 네까짓 것 못해볼까 봐 이렇게 한꺼번에 덤비냐? 야! 다 덤벼!"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고 나면 속이 좀 풀립니다. ^^*

흔히 자신을 무시한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 쓰는 말이,
'날 호구로 보냐?'입니다.
오늘은 호구를 알아볼게요.
겹겹이 쌓인 일이 저를 호구로 보지 말라는 뜻으로...

호구는
휴지나 소용없는 물건을 뜻하는 일본말 反故(ほう-ご,[호우고])에서 왔습니다.
이를 예스럽게 ほぐ[호구], ほうぐ[호우구], ほご[호고]라고 합니다.

따라서,
'네가 날 호구로 보냐?'라는 말은
네가 날 휴짓조각으로 보냐?
네가 날 물로 보냐?
날 물렁하게 보냐?... 뭐 이런 뜻이 됩니다.

세상이 제 삶을 물로 보거나 맹물로 볼지는 모르지만,
저를 '호구'로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보태기)
국어사전에서 '물'을 찾아보면
"자연계에 강, 호수, 바다, 지하수 따위의 형태로 널리 분포하는 액체"라고 나와 있습니다.
'맹물'을 보면
"아무것도 타지 아니한 물."과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하고 싱거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도 있으므로
네가 날 물로보냐?보다는 네가 날 맹물로 보냐?라고 하는 게 사전에 따르면 맞는 말입니다.
당연히 될 수 있으면 쓰지 않아야 할 말이고요. ^^*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 입니다.






[충남대학교는 녹록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로 시작할게요.
실은 제가 작년 말에 충남대학교 교원공채에 응모한 적이 있습니다.
1차 서류심사, 2차 논문심사, 3차 공개발표까지 하고,
지난주 목요일에 4차 총장면접을 했습니다.
그 결과를 오늘 발표하는데, 저는 떨어진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을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대학교 교수를 너무 쉽게 봤나 봅니다.
교수 자리가 그렇게 녹록한 자리가 아닌데...

오늘은 아쉬움을 달래며 녹록과 록록, 녹녹을 갈라볼게요.

먼저,
'녹녹하다'는 그림씨로
'물기나 기름기가 있어 딱딱하지 않고 좀 무르며 보드랍다.'는 뜻입니다.
녹녹하게 반죽을 하다처럼 쓰죠.
한자어가 아니라 순 우리말입니다.

녹록(碌碌/錄錄)하다도 그림씨인데,
'평범하고 보잘것없다.'는 뜻과 '만만하고 호락호락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녹록하지 않은 사람/나도 이제 녹록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처럼 씁니다.

록록하다는 북한에서 쓰는 말로,
'녹록하다'를 그렇게 씁니다.

굳이, 억지로 말을 만들어보자면,
제가 충남대학교를 녹록하게 보고 덤빈 거죠.
(녹녹하게나 록록하게가 아닙니다.)
그러니 떨어지죠. ^^*

아마도 교수가 되기에는 모든 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니,
실력과 덕을 더 쌓고, 좀더 겸손해지고,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나누고 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는 일부러 말을 만든 것이고,
저는 절대 충남대학교를 만만하게 보거나, 호락호락하게 보거나 녹록하게 보지 않습니다.
비록 저를 떨어뜨린 학교지만,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기를 빕니다.
더불어 이번에 충남대학교 교수가 되신 정 박사님의 앞날에도 큰 발전이 있기를 빕니다.

저는 오늘부터 베풂을 실천하고자
오늘 점심때 우리 과 직원을 모두 모시고 점심을 대접하겠습니다.
충남대학교 교수 떨어진 기념(?)으로...^^*

고맙습니다.

우리말 123

보태기)
움직씨 '베풀다'의 이름씨는 '베품'이 아니라 '베풂'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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