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8] 우리말) 소강과 주춤

조회 수 4192 추천 수 0 2013.07.18 09:19:58

아마 '소강상태에 접어들다'는 말도 저희 집 애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굳이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을 가져다 쓸 게 아니라,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주춤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거칠게 내리던 비가 어제 오후부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하네요.
더는 큰 피해 없이 물러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며칠 전에 애들과 같이 수원에 있는 서호를 돌다가 '탐조대'를 보고 애들이 저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새가 놀라지 않도록 숨어서 새를 보는 곳이라고 일러 줬더니,
어른들은 왜 그리 어려운 말을 쓰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소강상태에 접어들다'는 말도 저희 집 애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강(小康)은 병이 조금 나아진 기색이 있음 또는 소란이나 분란, 혼란 따위가 그치고 조금 잠잠함이라는 뜻입니다.
굳이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을 가져다 쓸 게 아니라,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주춤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소강'은 모를 수 있어도 '주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한자가 글자에 뜻을 담고 있어 글자 수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글자 수 줄이는 것보다 우리 얼을 제대로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얼마 전에 예쁜 엽서를 보고 애 엄마가 "밑그림이 참 예쁘다."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딸내미가 "맞아요. 엄마, 바탕이 참 곱네요."라고 말을 받았습니다.
그런 딸내미를 보면서 어른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렇게 좋은 우리말을 쓰는데, 자라면서 오히려 우리말을 잃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더울 것 같네요.
비가 주춤할 때 미뤘던 일도 하시면서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아래는 2007년에 보낸 우리말편지입니다.







[갈걍갈걍]

오늘이 어버이날입니다.
다들 부모님 가슴에 꽃 달아드리고 나오셨죠?
멀리 계신 부모님께는 전화라도 드렸을 것이고요.

저도 이제 슬슬 부모가 되어가나 봅니다.
지난 주말에 광주에 갔었는데,
이제 겨우 23개월 된 아들 녀석이 많이 아프더군요.

잘 놀고 평소 튼실하던 애가 갈걍갈걍하게 힘을 못 쓰니 보기에 참 안타까웠습니다.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병원 응급실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튼실하다 : 튼튼하고 실하다.)
(갈걍강걍 : 얼굴이 파리하고 몸이 여윈 듯하나 단단하고 굳센 기상이 있다.)

낮에는 잘 놀던 애가 저녁때는 잔지러지더군요.
자반뒤집기를 하며 토끼잠을 자다 잠투정을 하고...
(잔지러지다 : 몹시 자지러지다.)
(자지러지다 : 병이나 탈이 나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오그라지다.)
(자반뒤집기 : 몹시 아플 때에,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는 짓.)
(토끼잠 :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
(잠투정 : 어린아이가 잠을 자려고 할 때나 잠이 깨었을 때 떼를 쓰며 우는 짓.)

아무 힘 없이 추레한 모습으로 "아빠..."라고 하는데...
(추레하다 : 겉모양이 깨끗하지 못하고 생기가 없다.)

그래도 병원에서 주사 몇 대 맞더니,
새벽잠을 잤고,
이제는 설렁설렁 발싸심을 하기 시작하는 걸 보니 살아났나 봅니다. ^^*
(새벽잠 : 날이 샐 무렵 깊이 자는 잠)
(발싸심 : 팔다리를 움직이고 몸을 비틀면서 비비적대는 짓)

부모가 뭔지...
저에게 이 녀석이 왔으니,
건강하게 잘 키워야 할텐데...
제가 그럴 깜냥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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