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0] 우리말) 예/아니요

조회 수 7299 추천 수 0 2012.02.10 09:40:01

따라서 컴퓨터가 묻는 것에는 '예/아니요'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게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좀 풀렸죠? 주말에도 이렇게 포근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말에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작년에 찍은 가족사진에는 셋째가 아내 배 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안고 찍을 수 있겠죠? ^^*

며칠 전에 컴퓨터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컴퓨터를 부리는 건지 컴퓨터가 저를 부리는 건지 헷갈립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그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1.
컴퓨터를 쓰다 보면 컴퓨터가 주인에게 뭔가를 물어올 때가 있습니다.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예'나 '아니오'를 선택하게 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겠죠.
이때 '아니오'로 쓴 것을 가끔 봅니다. '아니요'라고 써야 바릅니다.
'아니요'는 느낌씨(감탄사) '아니'에 존대를 나타내는 토씨(조사) '요'가 붙은 꼴로, 
'철수 집에 있니?/아니요, 서점에 갔어요.'와 같이 윗사람이 묻는 말에 부정하여 대답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한편 '아니오'는 그림씨(형용사) '아니다'의 줄기(어간) '아니-'에 하오체의 어말 씨끝(어미) '-오'가 붙은 꼴로, 
'이것은 책이 아니오./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오.'와 같이 풀이말(서술어)로만 쓰입니다. 
따라서 컴퓨터가 묻는 것에는 '예/아니요'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게 맞습니다.

2.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자고로 컴퓨터는 사람이 일을 부려 먹고자 사람이 만든 기계입니다.
근데 왜 사람이 컴퓨터가 묻는 말에 존대해서 예나 아니요로 답을 해야 하나요?
컴퓨터가 모니터에 보여주는 글을 '예/아니요'가 아니라 
'응/아니'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법을 봐도 사물을 높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백화점 같은 데서 "가격이 오천 원 이십니다."라고 말하면 틀렸다고 말하잖아요.
'값이 오천 원 입니다.'로 해야 바르다고 말하면서,
왜 컴퓨터가 묻는 것에는 꼬박꼬박 높여서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 생각인데요.
저처럼 소심한 사람이 컴퓨터가 말썽부리면 여러 가지로 힘드니까 그냥 그렇게 높여주는 거 아닐까요? ^^*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빕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파경]

점심 먹고 들어와 인터넷 뉴스를 보니,
'이승환-채림 부부 파경'이라는 기사가 있네요.
제발 '이혼'이 아니라 '파경'이길 빌면서,
파경 이야기를 좀 드릴게요.
점심 먹고 나서 나른한 김에... 

'파경(破鏡)'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깨어진 거울. 
2. 이지러진 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사이가 나빠서 부부가 헤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파경'이라는 낱말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나옵니다.

남북조시대 남조(南朝)의 마지막 왕조인 진이 망해갈 때,
태자사인(太子舍人)인 서덕언(徐德言)이 아내와 헤어지면서,
'전쟁중이라 나라가 망할 수도 있소. 이 나라가 망하면 얼굴이 빼어나고 재주가 좋은 당신을
적들이 그냥 두지 않고 높은 사람이 첩으로 데려갈 것이오.
만약을 위하여 이 거울을 쪼개어 반쪽을 주니,
소중히 간직하다가 당신이 살아 있으면 내년 정월 보름날 장안 시장에서 만납시다. 
나도 살아 있다면 그날 반드시 시장으로 가겠소'라고 말합니다.
그 후, 두 사람은 깨어진 거울 반쪽씩을 품속 깊이 간직하고 헤어지죠.
전쟁 통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부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후, 
진이 멸망하고 서덕언의 아내는 남편의 예상대로 수나라의 건국 공신인 월국공 양소(楊素)의 집으로 팔려갑니다.
한편, 남편은 겨우 몸만 살아남아 약속한 시간에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깨진 반쪽의 거울을 파는 한 사나이를 보고 자신의 아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되죠.
아내가 보낸 그 사내에게 그 거울에 얽힌 사연을 얘기한 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머지 반쪽과 합친 다음 
거울의 뒷면에 다음과 같이 시를 적어 그 사나이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거울은 사람과 함께 갔으나 - 鏡與人俱去(경여인구거)
거울은 돌아오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네. - 鏡歸人不歸(경귀인불귀)
항아의 그림자는 다시없고 - 無復姮娥影(무부항아영)
밝은 달빛만 헛되이 머무네. - 空留明月輝(공유명월휘)

이 거울을 받아든 서덕언의 아내는 그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한 양소는 그들을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노자도 후히 주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죠?

이번에 '파경'을 맞았다는 채림 씨도,
아무쪼록 거울을 합치는 날이 빨리 오길 빕니다.

아래는 작년이던가... 심은하 씨가 결혼할 때 쓴 우리말편지를 덧붙입니다.

오후도 잘 보내세요.
많이 웃으시면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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