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파경]
점심 먹고 들어와 인터넷 뉴스를 보니, '이승환-채림 부부 파경'이라는 기사가 있네요. 제발 '이혼'이 아니라 '파경'이길 빌면서, 파경 이야기를 좀 드릴게요. 점심 먹고 나서 나른한 김에...
'파경(破鏡)'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깨어진 거울. 2. 이지러진 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사이가 나빠서 부부가 헤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파경'이라는 낱말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나옵니다.
남북조시대 남조(南朝)의 마지막 왕조인 진이 망해갈 때, 태자사인(太子舍人)인 서덕언(徐德言)이 아내와 헤어지면서, '전쟁중이라 나라가 망할 수도 있소. 이 나라가 망하면 얼굴이 빼어나고 재주가 좋은 당신을 적들이 그냥 두지 않고 높은 사람이 첩으로 데려갈 것이오. 만약을 위하여 이 거울을 쪼개어 반쪽을 주니, 소중히 간직하다가 당신이 살아 있으면 내년 정월 보름날 장안 시장에서 만납시다. 나도 살아 있다면 그날 반드시 시장으로 가겠소'라고 말합니다. 그 후, 두 사람은 깨어진 거울 반쪽씩을 품속 깊이 간직하고 헤어지죠. 전쟁 통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부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후, 진이 멸망하고 서덕언의 아내는 남편의 예상대로 수나라의 건국 공신인 월국공 양소(楊素)의 집으로 팔려갑니다. 한편, 남편은 겨우 몸만 살아남아 약속한 시간에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깨진 반쪽의 거울을 파는 한 사나이를 보고 자신의 아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되죠. 아내가 보낸 그 사내에게 그 거울에 얽힌 사연을 얘기한 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머지 반쪽과 합친 다음 거울의 뒷면에 다음과 같이 시를 적어 그 사나이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거울은 사람과 함께 갔으나 - 鏡與人俱去(경여인구거) 거울은 돌아오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네. - 鏡歸人不歸(경귀인불귀) 항아의 그림자는 다시없고 - 無復姮娥影(무부항아영) 밝은 달빛만 헛되이 머무네. - 空留明月輝(공유명월휘)
이 거울을 받아든 서덕언의 아내는 그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한 양소는 그들을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노자도 후히 주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죠?
이번에 '파경'을 맞았다는 채림 씨도, 아무쪼록 거울을 합치는 날이 빨리 오길 빕니다.
아래는 작년이던가... 심은하 씨가 결혼할 때 쓴 우리말편지를 덧붙입니다.
오후도 잘 보내세요. 많이 웃으시면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