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8] 우리말) 한글문화연대

조회 수 6196 추천 수 51 2007.09.10 09:32:54
한글문화연대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http://www.urimal.org)
학술, 방송, 언론,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름다운 우리 말글을 가꾸어,
세계화의 공세 속에서 잃어가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더 나아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독창적인 한글 문화를 일굴 것을 목적으로
2002년에 만든 모임입니다.

그 모임에서 며칠 전에 낸 성명서가 있어서 붙입니다.
그 아래는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를 맡고 있는 방송인 정재환 님이 며칠 전 경향신문에 낸 기사를 따다 붙입니다.


<행정자치부 규탄 성명서>

행정자치부는 ‘동사무소’ 이름 변경을 즉각 중단하라.

행정자치부는 금년 9월 1일부터 각 동의 ‘사무소’ 이름을  ‘주민센터’로 바꾸고 9월 중에 현판 교체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주민 생활 서비스 전달체계 혁신이 전국적으로 완료되어 금년 7월부터 동사무소가 복지·문화·고용·생활체육 등 주민 생활 서비스를 주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통합서비스기관으로 전환됨에 따라 달라진 동사무소의 기능에 걸맞은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고, 주민에게 이를 널리 알려 주민생활서비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동사무소의 기능이 주민 생활의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은 행정의 발전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 한글문화연대는 행정자치부의 혁신 노력이 왜 하필이면 ‘센터’라는 외래어로 마무리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외래어를 실생활에서 무분별하게 남용하여 우리말을 파괴하는 풍조를 정부가 나서서 장려하는 꼴이다.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꾸면 그에 따라 현판과 유도 간판, 발급 문서, 지도, 지리안내기 등이 모두 ‘센터’라는 외래어를 사용할 것이다. 알다시피 동사무소는 초·중등학교 다음으로 숫자가 많은 공공기관이다. 이번에 행정자치부가 이름을 바꾸는 동사무소는 전국에서 이천 개가 넘는다. 그러니 그 파급 효과는 어떠할 것인가? 일반 주민들은 일상에서 외래어 남용을 문제로 느끼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우리말은 급속히 순수성을 잃어갈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선조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둘째, 행정자치부는 ‘주민센터’가 부르기 쉽고, 주민 중심의 통합서비스 제공기관 임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명칭으로써국민과 관계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동사무소명칭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자치부의 독단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의견을 모으고 외부의 자문 절차를 거쳐 만든 이름이니 자신들에겐 책임이 없고 문제될 것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절차에 하자가 없다 하여 문제가 없는 것은 ? 瘙?아니다. 근본적으로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민주적이고 능률적인 행정을 구현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여기는 조상 대대로 내려 온 우리 말과 한글을 쓰는 한국 땅이며, 이 명칭 개정을 준비한 행정자치부 공무원이나 이 이름을 사용할 동사무소의 공무원 모두 한국의 공무원이다. 그렇다면 우리 말로 부르기 쉽고 뜻도 걸맞은 이름을 먼저 찾아 나서고, 한글 관련 학계나 시민단체의 의견을 우선 구해야 하건만 행정자치부는 그런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앙상한 요식 절차를 거쳤다고 하여 공무원으로서의 기본 임무를 충실히 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센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에도 위배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한 의사 소통을 통한 공동선의 구현 과정에 있다. 따라서 의사 소통의 매개인 언어 민주주의는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의 기초인 바, 공공 기관이 이름을 영어로 사용하면서 어찌 주민 생활의 중심이 되겠다고 하는가? 이는 영어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것인 바, 주민의 의식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하여 행정자치부가 이번의 명칭 개편에서 지방 읍·면사무소를 제외한 조치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센터’라는 영어가 안 통한다는 것이 곧 의식의 미성숙이라는 뜻이니, 농어촌 지역에서 생활하는 국민들을 깔보는 마음이 너무나도 분명하지 않은가?

넷째, 현판과 안내 간판, 각종 문서 발급, 지도, 지리안내기 등등에 들어갈 돈은 어찌할 것인가? 국민의 혈세를 마치 연말에 길바닥 파헤치듯 또 낭비하려는 것인가? 예전엔 ‘119’를 불 끄는 곳으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119의 기능이 확장된 걸 잘 알고 있고, 위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119를 찾는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 보겠다는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변화하는 동사무소의 기능을 잘 홍보하기만 해도 헛돈 쓰지 않고 행정 혁신의 노력은 성공할 수 있다. 혁신은 이름을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일하는 방법과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모양만 다른 구태의연한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우리 한글문화연대는 행정자치부가 동사무소의 이름을 ‘주민센터’로 바꾸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영어 사대주의에 빠져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귀중한 혈세만 낭비할 이번 조치를 당장 중단하라.

<우리의 요구>
1. 명분 없고 영어사대주의 에 빠진 동사무소 이름 변경을 즉각 중단하라.
2. 이름 변경이 행정 목표 상 불가피하다면 국어전문가, 한글운동시민단체 등의 자문을 받아 새로이 실행하라.

2007년 8월 31일

한글문화연대 대표 고경희


주민은 '센터'가 필요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기업들이 이름을 영어로 바꿨다. ㅁㄷ양말, ㅂㅇ메리야스, ㅅㄱ그룹, ㄱㅁ은행 등은 사라지고 MDC, BYC, SK, KB 등만 남았다. 최근에는 공기업들도 영어로 이름을 바꾸고 있다. KORAIL, K-water, CH, SH, aT 등등 설명을 듣지 않고는 뭐하는 곳인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생경한 이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름은 얼굴이고 상징이다.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한데 지금 우리는 우리 본연의 모습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일반 기업도 문제지만 소위 공기업이라는 곳들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부족해서 정부가 나섰다.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꾼단다. 동사무소라는 이름이 새롭게 그동안 준비해 온 종합적인 대국민 서비스 체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인 듯하다. 그렇다면 ‘주민센터’는 어울리나? 이미 카센터니 스포츠센터니 문화센터니 하는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심지어 ‘주민자치센터’라는 것까지 있다. ‘센터’의 난립으로 인해 뭐가 뭔지 헷갈려 차별화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꾸면 ‘주민자치센터’는 싫든 좋든 ‘센터’란 이름을 내주어야 한단다. 그깟 ‘센터’가 뭐 그리 좋다고 쟁탈전까지 벌이는 걸까?

행정자치부가 만든 일을 갖고 중앙정부를 통째로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요즘 우리 공무원 사회의 정서가 대충 그렇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클린센터라든가 그린존, 스쿨존, 스쿨폴리스, 에이블 2010, 시니어클럽 등등의 이름이 모두 정부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과거 이해찬 총리 시절에는 정부에서 하는 일에 영어 이름을 붙이지 않겠다고 해서 이제는 우리말이 좀 살겠구나, 이제는 사는 것도 좀 편안해지겠구나, 해서 매우 반가웠는데 언제 그런 발표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최근 노원구에서는 간판에 영어표기를 의무화했고, 마포구에서는 지역 이름을 ‘타운’으로 고치겠다고 발표했고, 부산에서는 아예 도시 전체를 영어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위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이런 정책이 홍수처럼 쏟아지 고 있다. 이렇게 해야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세계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고뇌의 결과가 고작 이런 수준이라면 차라리 복지부동을 권하고 싶다.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주민센터라는 ‘간판’보다 내용이다. 오랫동안 정겹게 써온 동사무소란 이름을 ‘주민센터’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혼란만 주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도 상처를 줄 것이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부스러기 영어를 남발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연히 우리말과 한글 사랑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정재환 : 한글문화연대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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