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13] 우리말) 신 김치와 쉰 김치

조회 수 10168 추천 수 144 2007.12.13 11:21:30
'날씨가 따뜻해서 김치가 쉬이 익는다'고 하면 말이 되고 무슨 뜻인지도 쉽게 알 수 있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김치가 쉬이 쉰다'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합니다. 말이 된다면 무슨 뜻일까요?


안녕하세요.

아침에 병원에 좀 다녀오느라 편지를 이제야 보냅니다.
달포 쯤 전부터 속이 이상했는데, 일이 많아 계속 미루다 오늘 짬을 좀 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하실지 자글거려서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
(자글거리다 : 걱정스럽거나 조바심이 나거나 못마땅하여 마음을 졸이다.)

어제 김치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오늘 좀 이어볼게요.

"맛이 식초나 설익은 살구와 같다"는 뜻의 그림씨(형용사)가 '시다'입니다.
여기서 나온 게 '신 김치'입니다.
"김치, 술, 장 따위가 맛이 들다"는 뜻의 움직씨(동사)가 '익다'이니,
"잘 익어서 신 맛이 나는 김치"는 '신 김치'가 됩니다.

'쉬이'라는 어찌씨(부사)가 있습니다.
"가능성이 많게"라는 뜻으로
유리잔은 쉬이 깨진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김치가 쉬이 쉰다처럼 씁니다.

자, 여기서 '김치가 쉬이 쉰다'가 무슨 말일까요?
'김치가 잘 쉰다' 또는 '김치가 쉽게 쉰다'는 뜻 정도 될텐데,
김치가 쉰다는 게 말이 되나요?
시게 되는 것을 쉰다고 하나요?

'날씨가 따뜻해서 김치가 쉬이 익는다'고 하면 말이 되고 무슨 뜻인지도 쉽게 알 수 있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김치가 쉬이 쉰다'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합니다. 말이 된다면 무슨 뜻일까요?

김치에는 시다와 쉬다를 모두 쓸 수 있습니다.
'김치가 시다'고 하면 김치가 잘 익어서 신맛이 난다는 뜻이고,
'김치가 쉰다'고 하면 김치가 너무 익어서, 곧 상해서 먹을 수 없게 된 것을 말합니다.
말장난 같지만,
뜻을 그렇게 가를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제 김치 냉장고를 샀으니 김치가 쉬이 시지도 않을 것이고 쉬이 쉬지도 않겠죠?
또, 제가 좋아하는 신 김치를 맘껏 먹을 수 있고, 쉰 김치는 없어지겠죠?  ^^*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사랑의 열매]

목이 따갑고 슬금슬금 아픈 게 아무래도 감기 초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 아플 때가 아닌데...
더군다나 지금 논에 나가야 하는데... 쩝...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국어나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가슴에 붉은색 열매를 단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사랑의 열매’에 대한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요즘 같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학교에서 여러 가지 성금을 가지고 오라고 했었습니다.
그게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부모님을 졸라 성금을 냈죠.
어떤 때는 그것도 못 내 온종일 칠판 한 귀퉁이에 이름을 남긴 적도 있었고...
나이가 들어 세상물정에 조금씩 눈뜰 때,
그때 내가 냈던 성금 중 일부가 검은돈이 되어 정치자금으로 사용됐다는 더러운 뉴스를 들을 때면 더 없는 분노와 허탈감도 느꼈었고...
그러나 예로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정 많은 민족의 자손이라서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ARS 모금전화번호를 누르는 게 우리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원제도는 엉망이었습니다.
복지시설의 원장이 기부금을 얼마나 잘 모으는가에 따라
복지 시설에 사는 사람들의 복지 수준이 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마음으로 같이 사는 사람들과 서로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며 모든 어려움을 함께하는 성실한 복지 시설은 늘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반대로 정치성향이 강한 원장이 여기저기 밖으로 뛰어 모금을 많이 해 오는 시설에 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었죠.
이런 어긋남 때문에 사회 복지 시설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었고,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먼 일부 복지 시설 원장의 못된 짓이 가끔 방송에서 나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사람들의 이해와 참여를 바탕으로 생활 속의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세운 단체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입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998년 11월 기부문화의 정착 및 확산, 배분사업을 통한 민간복지 발전을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법률 제5960호)에 따라 세운 기금 모금과 배분 전문기관이죠.
이제는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나누고자 하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 만하면 됩니다.
사회복지모금회에서는 복지 시설의 크기나 사는 사람 수를 헤아려
이 기금을 투명하고 공정하며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복지시설 원장이 운영비를 따오려고 여기저기 쫓아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잿밥’에는 신경 끄고, ‘염불’만 잘하면 되는 것이죠

앞에서 말한 사랑의 열매가
바로 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달아주는 것입니다.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상징하는 세 개의 빨간 열매와
이 셋이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초록의 건강한 사회를 뜻한대요.
이런 사회를 만들고자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감사의 표시로 달아주는 이웃사랑의 상징이 바로 사랑의 열맵니다.

날씨가 꽤 추워졌죠?
그냥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적어봤습니다.
잠깐 틈을 내서 주위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볼 줄 아는 여유도 가져보심이 어떠신지...

젯밥 : 祭제삿밥
잿밥 : 齋불공할 때 부처님 앞에 놓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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