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8] 우리말) 아구탕과 아귀탕

조회 수 6237 추천 수 85 2007.12.28 11:00:21
소고기와 쇠고기처럼
과일주와 과실주, 아구탕과 아귀탕을 복수표준어로 만들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어젯밤 KBS 단박인터뷰에 박노자 교수가 나왔습니다.
끝날 때쯤 '아구탕'이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자막도 '아구탕'이라고 나왔습니다.
싱싱한 아귀와 된장, 콩나물, 미더덕 등을 넣고 끓여내는 것은 '아귀탕',
고춧가루와 다진 파, 마늘 따위로 매운맛을 내고, 미더덕, 콩나물, 미나리 따위를 넣어 아귀와 함께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내는 찜은 '아귀찜'입니다.
아구탕이나 아구찜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전에 아구찜이나 아구탕은 없습니다.
방송에서 아구찜이라고 자막이 나오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좀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며칠 전 '과일주'가 아니라 '과실주'가 맞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왜 그렇죠?
과일주나 과실주나 뭐 그리 다른 게 있다고 과일주는 틀리고 과실주만 맞죠?

중국 강남지방에서 들여온 콩이라 '강남콩'이라 이름 붙인 콩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내기 어려운 강남콩보다 '강낭콩'으로 쓰는 사람이 많아지자,
표준어를 강남콩에서 강낭콩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쓰는 말이 바뀌어,
표준어가 바뀌기도 하고 복수표준어가 되기도 합니다.

식당에 가서 보면
아구탕이라 하지 아귀탕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아구찜에 소주 한잔한다고 하지, 아귀찜에 소주 한잔 한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귀는 그저 사전에만 남아 있고,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귀와 아구를 같이 표준어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소고기와 쇠고기처럼
과일주와 과실주, 아구탕과 아귀탕을 복수표준어로 만들면 어떨까요?

제가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세상에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내 말만 옳고 네 말은 틀리다고 할 수 없이 여러 생각이 함께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인정받으려면 먼저 남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네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좋습니다.
내년에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불초소생]

오늘은 ‘불초’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흔히 자기 자신을 낮추어 말할 때,
“불초소생이 어쩌고저쩌고”라고 합니다.
“불초소생인 저를 뽑아주셔서 어쩌고저쩌고...”
“불초소생인 제가 막중한 임무를 맡아 어쩌고저쩌고...”
보통 정치인이나 고관대작들이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근데 이 ‘불초’라는 낱말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식과 임금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불초(不肖)는
아니 불, 닮을 초 자를 써서,
자기의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는 말로,
자식이 부모에게 자기를 낮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또, 임금이 선왕을 닮지 못해 큰 뜻을 따르지 못한다는 겸손한 의미로만 씁니다.
맹자(孟子) 만장(萬章)편 상권에 있는 말이죠.

따라서,
‘불초소생’은,
‘제가 아버지의 큰 뜻을 따라가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의미로 씁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이런 겸손한 말을,
시궁창에 처박혀 사는 정치인들이 세 치 혀로 언죽번죽 지껄이면 안 되죠.

돌아오는 일요일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입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도록 저를 가르치셨죠.
오죽했으면,
7대 독자인 제게,
“남들이 진정으로 원하면 네 XX도 떼 줘라.”라고 하셨으니까요.

자신에게 소중한 것도
남들이 필요하다면 뭐든지 내주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저는 못 따르고 있습니다.
남을 챙겨주고 배려하기는커녕,
작은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
부질없는 욕심에 마음 아파하고...

이런 ‘불초소생’이
앞으로는 남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배려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드리러
아버지를 뵈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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