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말편지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배우거나 얻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추워졌네요.

오늘은 오랜만에 제 개인 이야기 좀 할게요.

실은 어제저녁에 딸내미 재롱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부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오셨더군요.
저는 그 잔치를 차마 보지 못하고 맨 뒤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맨 뒷자리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 눈물을 즐겼습니다.
웃다가 울면서 맘껏 즐겼습니다. 저는 제 자식의 재롱잔치를 처음 봤거든요.
웬 울음이냐고요? ^^*

언젠가 제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이
"젊은 사람이 그렇게 누선이 약해서 어떻게 큰일을 하겠나?"라고 핀잔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제 딸아이도 텔레비전 보면서 우는 저를 보고,
"아빠 또 울어?"라고 말할 정돕니다.
저는 눈물이 참 많습니다.
제가 눈물이 왜 많아졌는지를 오늘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우리말편지에서 아들 이야기는 거의 안 하고
딸 이야기만 가끔 하는데 왜 그런지도 오늘 편지를 읽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몇 년 전에
제가 불임으로 고생하다 애를 가졌을 때
한 게시판에 올린 글을 붙입니다.
좀 깁니다. ^^*

그 애가 벌써 다섯 살이 되었고,
저는 오늘 그 애와 양재동 꽃시장에 놀러 갑니다. ^____^*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2003년 1월 21일 저녁....
회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아는 분으로부터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어요.
"여보세요!"
"임신이랍니다. 임신!"
"예? 뭐라고요?"
"아. 임신이라니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
.
.
.
.

저는 태어나서,
저와 관련된 임신이라는 낱말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떨리고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던지....
제가 말을 못 잇고 있으니,
상대방이 계속해서 "여보세요"를 외치고 계셨던 겁니다.

그날 오전에,
제가 아는 분께 전화들 드렸어요.
아침에 병원에서 이러저러한 연락을 받았는데,
내용을 잘 모르겠으니,
산부인과 의사인 사모님께 여쭤봐 달라고....

그 전화가 저녁에 온 겁니다.
임신이라고....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들은 말 중 가장 기쁜 말이었습니다.
그분은 필시 큰 복을 받으실 겁니다.
남에게 이렇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셨는데,
어찌 복 받지 않겠어요. ^^*



그동안 저는
12대 종손, 7대 독자, 1남 7녀의 집안에서,
늦깎이로 결혼한데다가,
결혼 뒤 6년 동안 애 소식이 없어서
이러저러한 애간장을 많이 태웠거든요.

그동안 좋다는 병원 다 다녀봤고,
애 낳는다는 약도 다 먹어봤고,
달을 보고도 기도하고,
별을 보고도 기도하고....
용하다는 무당까지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이제는 되겠지,
이번에는 성공하겠지....
노심초사 생각하는 것은 하나뿐....
그러다보니,
친구관계도 소홀해지고,
친척들과도 소홀해지고,
사소한 일로 아내와 다투게 되고,
지나가는 애만 봐도 돌아서서 눈시울 적시고....

기다림에 지치고,
마음은 약해지고,
속까지 허 해져서 의욕마저 없더군요.

기다림의 고통을 잊고 여유를 찾고자,
여기저기 일을 찾아 헤매도 보고,
미친놈처럼 일에 매달려도 보고,
산에 올라 미친 듯이 소리도 질러보고....
.
.
.


2년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산부인과라는 곳에 아내와 같이 처음 발을 들여놨습니다.
그동안은
둘 다 건강하니 언젠가는 생기겠지 하며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생활하다가....

집 근처에 있는 병원인데,
가자마자 이런저런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자기가 이런 경우 많이 봤다고,
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같이 해 보자더군요.
그래서 그날부터 그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죠.
그러나 한 달, 두 달... 달이가고 해가 가도
전혀 달라지는 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다가 작년 초에는 담당의사가 사직했으니,
다른 사람에게서 진료를 받든지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래요...
이런....C8
제가 재떨이로 아버지를 무시한 의사의 대갈통을 날려버린 화려한 경력이 있는데,
그때 일이 순간 떠오르더군요...
근데 이 말을 해 준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서 참고 그냥 나왔죠...
나이도 먹었고...

그러고 집에 있다 보니 또 몇 달이 훌쩍 지나가더군요.
작년 여름....
이번에는 큰 병원으로 가보자,
해서,
근처에 있는 불임 전문병원인 평촌 마리아 병원을 찾아갔죠.
여기서도 이런 조사 저런 조사 다 해보고 나서,
드디어 시험관으로가자고 결론이 났어요.
시험관 시술 전에
아내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고자 이러저런 약을 먹고,
배란 유도제 주사 맞고....
저 또한 건강한 정자 추출을 위해 술, 담배 다 끊고....

작년 11월 15일.
드디어,
정자와 난자를 채취했습니다.
근데
아내에게서 난자가 무려 32개나 나왔어요.
여자들이 보통 한 달에 한 개씩 나오는데,
아내는 남들 3년 동안 나올 게 한꺼번에 다 나온거죠....
그러니 그 몸이 오죽했겠어요.
일단은 수정을 시키고,
5일 동안 배양한 뒤 아내 몸에 이식하기로 했는데,
이런.... 아내가 복수가 찬 겁니다.
하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으니....

그래서, 수정란은 냉동을 시키고,
다음 달을 기약하기로 했죠.
수정란을 뜀박질 시켜서 똘똘한 녀석 열 개를 골랐다더군요.
그 열 개만 냉동한 거죠.
수정란을 냉동시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기분 참 묘하데요.
어찌 되었건, 나와 내 아내의 몸에서 나온 생명체인데,
그 녀석들을 냉동시킨다고하니....

다음달에 정상적으로 생리가 끝나고,
병원에 다시 갔어요.
그게 작년 12월이죠.
근데 이번에는 또 뭐가 어쩌고 어째서 안 된다는 겁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데요.
그런 말을 해 주는 의사가 미워지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에,
친절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는 의사보다
미안한 마음에 무표정하게 처방전을 건네주는 간호사가 차라리 더 낫더라고요.
누굴 미워할 수도 없고, 누굴 원망할 수도 없고,
차라리 그럴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다시 또 한 달을 기다렸죠.
그러면서 해가 바뀌고....
올 1월 11일 드디어 아내 몸에 수정란을 이식하기로 했습니다.

그 전부터,
아내는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주사를 맞았어요.
저는 출근 전에 근처에 있는 퇴역한 간호사 집에 아내를 태워다 주고,
주사 맞고 힘없이 걸어나오는
아내를 다시 집에다 바래다주고 출근하는데,
정말 출근하기 싫더군요.
매일같이 그 짓을 몇 개월을 했는지...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저녁에 퇴근해서는
벌집이 된 아내 엉덩이를 주물러주며,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세상 원망도 참 많이 했고요.

수정란 이식을 위해
냉동된 열 개를 해동시켜보니,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해롱해롱하는 녀석들 빼고,
정신 제대로 차린 녀석들이 5개였데요.
그 녀석들 다시 뜀박질시켜,
세 개를 골라 아내 몸에 넣었다더군요.
수정란 이식 뒤 오전에 병원에서 쉬다가,
점심때 제가 데리고 왔어요.

12층 병원에서 3층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더군요.
아마도 기도 중이었겠죠....
그 모습을 보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피터져라 입술 꼭 깨물고
다행히 아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나를 만나지 않았으며,
이런 고생하지 않고 잘 살텐데....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기에....
다음 생에서는 나를 만나지 마오.
내가 당신의 종이 되어서,
당신 사랑 천만분의 일이라도 갚겠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둘 다 아무 말이 없었어요.
무슨 말이라도 하면 부정탈까봐....

그날 퇴근하는 길에 꽃집에 들러 장미 한 송이를 샀습니다.
예쁘게 포장하여 아내 손에 건네는데,
아무 말도 안 나오더군요.
....

병원에서 수정란을 이식하고,
일주일 뒤에 피검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1월 20일 피검사 예정.
그 검사 결과를 보면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대요.
근데, 그 일주일이 왜 그리 길던지....
회사일도 손에 안 잡히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싫고....

드디어 일주일 뒤,
1월 20일, 어제, 피검사를 했습니다.
간단히 피만 빼고 나왔죠.
그 결과를 다음날 아침에 알려준대요.
아내를 집에 데려다 주고,
사무실에 나왔는데,
무슨 일이 잡히겠어요?
한 시간이 그처럼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어요.

오후에 연가를 내고,
무작정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인천 가는 산업도로에 올라타 무작정 밟았죠....
아무 생각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여기저기 정처 없이 헤매다 정신차려 보니,
어느 산 밑이더군요.

문득,
얼마 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아내와 저는 녹차를 좋아하는데,
둘이서 오붓하게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원목으로 된 찻상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근처 목공소 몇 군데에 들러서,
찻상으로 가공할 만한 원목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와,
그라인더로 열심히 갈았죠.
모든 잡념이 다 없어지더군요.
도 닦는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갈고 닦았습니다.
갈면서 세상 원망도 원 없이 했고,
닦으면서 기도도 원 없이 했고....

한 시간만에 멋진 찻상 하나를 만들어서,
그날은 일찍 퇴근하여 집에 들어갔습니다.
찻상을 보더니 아내가 환하게 웃는 거예요. ^^*
근래에 아내가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 처음 봤어요.
저보다 더 힘든 게 아내잖아요.
삶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진작 해 줄걸.... 왜 그런 정성이 없었는지....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 찻상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더군요. ^^*
내가 출근하고 나면,
저 찻상에서 아내가 차 한 잔을 하며 시름을 달래겠지....
가끔은 내 생각도 할까? ^^*

피검사 다음날 아침. 오늘,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지더군요.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올 리가 있나요.
8시가 넘자마자 바로 병원에 전화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고....
아내가 전화하는 동안,
옆에서 양말 신으면서 그걸 듣고 있는데,
왜 그리 답답하던지....

결과는 수치 147....
임신일 가능성이 있음....
그 수치가 뭘 뜻하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어요.

전화를 끊고
둘 다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서로 쳐다보기만 했어요....
눈물도 안 나오더군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그저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뿐....

이제 또 일주일을 기다려서,
피검사를 다시 해 봐야 한다는군요.
그래야 임신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데요.
그리고 나서,
또 일주일 뒤 다른 검사를 해서,
아기집이 생긴 것을 봐야 안심할 수 있다는군요.
그게 임신이 된 거죠.

남들은 임신인 줄 알게 되면 그게 곧 한두 달인데,
저는 임신 일주일이라니....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어렵게 얻었으니,
그 애가 이 세상의 빛을 볼 때까지,
또,
정성스럽게 기다릴 겁니다.
조심조심,
한 걸음 한 걸음 정성들여 걷겠습니다.

남들에게는 쉬운 일이
저에게는 이렇게 시련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지금보다 더 겸손해지고,
지금보다 더 신중해지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라는 신의 계시겠죠....

어느 불임 부부가 한 게시판에 썼다는 글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어느 우주로부터 우릴 향해 열심히 다가오고 있는 아가에게
빨리오라 재촉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그 여리고 작은 발로 제깐엔 열심히 아주 열심히
오고 있는 중이니까요.
좀 느리긴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엄마 품을 제대로 찾아오리란 걸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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