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7] 우리말) 엉터리 자막 두 개

조회 수 3145 추천 수 101 2008.06.17 09:42:41
"술의 힘을 빌어"라고 이야기했고, 자막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빌어'가 아니라 '빌려'가 맞습니다.

'...하길 바랬다'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하길 바랐다'가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편지가 좀 늦었죠?
일터에 나오자마자 이승돈 박사와 후반기 과제관리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편지를 미쳐 못썼습니다.
편지 짧게 쓰고 오늘 일 들어가야겠네요. ^^*

어젯밤에 집에 들어가 씻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게 보이더군요.
MBC, 11:47
"술의 힘을 빌어"라고 이야기했고, 자막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빌어'가 아니라 '빌려'가 맞습니다.

'빌다'에는
1.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
2.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호소하다
3.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다.
는 뜻밖에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OOO에게 감사하고...'에 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빌리다'는
1.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
2.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
3.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
는 뜻이 있습니다.
'술의 힘을 빌려'가 맞습니다.

MBC에서 자막이 엉터리라서 바로 KBS로 돌렸습니다.
거기서도 사람 눈을 피곤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더군요.

KBS, 11:57
'...하길 바랬다'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바래다'는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하다."는 뜻입니다.
빛바랜 편지, 색이 바래다, 종이가 누렇게 바래다처럼 씁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바램'이 아니고 '바람'입니다.
'...하길 바랐다'가 맞습니다.

제 눈을 더는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아 11:58분에 텔레비전을 끄고
왼팔에는 딸내미를 눕히고, 오른팔에는 아들 녀석을 눕힌 채 잠들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에누리]

어제 오후에 가족과 함께 대형 시장에 갔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 쎄일’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모두 ‘20% 에누리’라고 썼네요.

한 5-6년 전입니다.
어떤 술자리에서 제가,
“‘세일’이라는 이상한 말을 쓰지 말고 ‘에누리’를 쓰자”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이,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세계화가 안 된다.
그럼 비행기도 날틀이라고 하고 이화여대도 배꽃계집큰학교라고 해라.
그따위 소리 잘못하면 북한 따라간다는 말 들으니 조심해라.
이상한데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농업 하는 사람이 무슨 한글 나부랭이냐.
그렇게 고리타분해서 어디에 쓰겠냐?
......
그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서 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오늘은 ‘에누리’말씀을 좀 드릴게요.

‘20% 에누리’가 무슨 말이죠?
1만 원짜리 물건을 20% 깎아 8천 원에 준다는 말이죠?
맞죠?

만약에,
1만 원짜리 물건에 ‘20% 에누리’라고 붙여 놓고,
1만2천 원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물건을 판 사람은 사기꾼이겠죠?

아니요.
그 사람은 사기꾼이 아닙니다.
1만 원짜리 물건에 ‘20% 에누리’라고 붙여 놓고,
8천 원을 받아도 되고, 1만2천 원을 받아도 됩니다.

우리말 ‘에누리’는 정반대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사전에서 ‘에누리’를 찾아보면,
1. 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 또는 그 물건 값.
2. 값을 깎는 일.
3. 실제보다 더 보태거나 깎아서 말하는 일
4. 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주는 일
로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누리가 없는 정가(正價)이다.
인심이 순후하여 상점에 에누리가 없고 고객이 물건을 잊고 가면 잘 두었다가 주었다.
에 나오는 ‘에누리’는 “물건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을 말하고,

정가가 만 원인데 오천 원에 달라니 에누리가 너무 심하지 않소?
에누리를 해 주셔야 다음에 또 오지요.
에 나오는 ‘에누리’는 “값을 깎는 일”이고,

그의 말에는 에누리도 섞여 있다.
정말 소중한 얘기는 그렇게 아무한테나 쏟아 놓지 않는 법이야. 설사 하더라도 에누리를 두는 법이지.
에 나오는 ‘에누리’는 “실제보다 더 보태거나 깎아서 말하는 일”이며,

일 년 열두 달도 다 사람이 만든 거고 노래도 다 사람이 만든 건데 에누리없이 사는 사람 있던가?
에 나오는 ‘에누리’는 “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주는 일”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인이 에누리한 물건을 손님이 에누리해서 샀다면 그것은 본전입니다.
재밌지 않나요?

어쨌든,
시장에 붙은 ‘20% 에누리’는 정가보다 20% 깎아준다는 말이지,
설마, 다른 가게보다 20% 비싸다는 뜻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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