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4] 우리말) 짜집기와 짜깁기

조회 수 3460 추천 수 82 2009.01.14 10:13:22
거듭 말씀드립니다.
오늘 우리말 편지는 정치 이야기도 아니고, 미네르바 이야기도 아니며,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짜집기가 아니라 짜깁기라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낸 문제 답은 '바람칼'입니다.
새가 하늘을 날 때 날개가 바람을 가르는 듯하다는 뜻으로,
새가 바람을 타고 놀며 날갯짓을 전혀 하지 않는 바로 그 날개를 '바람칼'이라고 합니다.
그제부터 '칼바람'이야기를 하면서 뚱겨드렸는데도 문제가 좀 어려웠나 봅니다.
새 날개를 칼에 빗댄 말이 멋져서 소개했습니다.

오늘 아침 7:17, SBS뉴스에서 독도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237종이라고 나왔습니다.
동물에는 '서식'을 쓰지만, 식물에는 '자생'이라고 해야 합니다.
식물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거든요. ^^*

오늘 편지는 좀 조심스럽게 들어가겠습니다.
요즘 미네르바이야기가 많습니다. 어제는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오늘 편지는 그분의 글이 맞다거나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분의 행동을 두고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짧은 우리말 이야기일 뿐입니다.

여기저기서 듣기에
미네르바라는 분이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짜집기' 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실력인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주워 모아서 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짜집기'와 '짜깁기'를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흔히 글이나 영화 따위를 편집하여 하나의 다른 작품을 만드는 것을 '짜집기'라고 하는데 이는 '짜깁기'를 잘못 말한 겁니다.

짜깁기는 짜다와 깁다를 합친 낱말입니다.
짜다는 "실이나 끈 따위를 씨와 날로 결어서 천 따위를 만들다."는 뜻이고,
깁다는 "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에 다른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는 뜻이므로,
직물의 찢어진 곳을 그 감의 올을 살려 본디대로 흠집 없이 짜서 깁는 일이 '짜깁기'입니다.
여기서 뜻이 넓어져 이런저런 글을 따다가 다른 글을 만든 것을 '짜깁기'라고 하게 된 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오늘 우리말 편지는 정치 이야기도 아니고, 미네르바 이야기도 아니며,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짜집기가 아니라 짜깁기라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 입니다.







[느리다/늦다]

며칠 전에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제 후배가 큰 상을 하나 받았더군요.
그해에 나온 그 분야 박사학위 논문 중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그 분야에서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어찌나 기쁘던지, 바로 미국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근데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겁니다.
어?, 왜 전화를 안 받지?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미국과 우리나라가 시간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오후에 전화를 했으니까 제 후배 전화는 새벽에 울렸겠죠.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15시간이 느린데...그걸 깜빡하고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15시간 느린 거 맞죠?

아니요.
15시간 느린 게 아니라 늦은 겁니다.

'느리다'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나
"움직임이 빠르지 못하고 더디다"는 뜻으로,
속도(速度)와 관계가 있습니다.
행동이 느리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처름 씁니다.
품사는 형용사죠.

'늦다'는,
"정해진 때보다 지나다"는 뜻으로,
그는 약속 시간에 늘 늦는다, 버스 시간에 늦어 고향에 가지 못했다처럼 씁니다.
시기(時期)와 관계가 있습니다.
품사는 동사입니다.

지구 자전에 따라 우리나라에 먼저 해가 뜨고,
그보다 15시간 뒤에 미국에 해가 뜨므로,
미국 시간대가 우리나라 시간대보다,
15시간 늦은 겁니다.

'느리다'는 형용사이므로,
'15시간 느리다'고 하면 말이 안 됩니다.

멀리 미국까지 유학 가서,
큰 상을 받은 자랑스러운 제 후배를 거듭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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