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덜미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일단 붙잡히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곧, 덜미가 결정적인 약점인 샘이죠.
따라서 덜미를 잡히는 것은 결정적인 약점을 잡히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 KBS뉴스에서(6:42)
안중근 의사 '추모'라고 안 하고 '뜻 기려'라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 편지를 보시고
희아리아 아니라 희나리가 맞다는 분이 많으셨는데요.
희나리는 채 마르지 않은 장작을 뜻하고,
"약간 상한 채로 말라서 희끗희끗하게 얼룩이 진 고추"는 희아리가 맞습니다.
어제 황우석 전 교수의 선고재판이 있었습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황우석 박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정부지원 연구비 횡령과 난자를 불법으로 매매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3년쯤 전인가요? 그 일이 터진 게...
한 대학원생이 논문에 실린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덜미가 잡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안타까운 일로 지금도 제 기억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덜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덜미에는 목덜미도 있고 뒷덜미도 있습니다.
목의 뒤쪽 부근을 목덜미라 하고
목덜미 아래의 양 어깻죽지 사이를 뒷덜미라고 합니다.
이 덜미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일단 붙잡히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곧, 덜미가 결정적인 약점인 샘이죠.
따라서 덜미를 잡히는 것은 결정적인 약점을 잡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덜미를 잡히면 힘을 쓸 수가 없게 되어 덜미를 잡은 사람의 뜻대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늘 편지는 그냥 덜미를 설명하는 것으로만 봐 주십시오.
황우석 박사의 연구나 활동에 대한 논쟁으로 휘말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치 예전에 보낸 편지는
몇 년 전 황우석 박사 일이 터졌을 때 보낸 편지를 붙입니다.
[가슴이 아프네요]
뉴스를 보니 참 슬프네요.
단군 이래 최대의 영웅이라는 황우석 교수.
저는 그 분야의 지식이 없어서 사실이 뭔지 진실이 뭔지도 모르는 어리보기로
(어리보기 :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
가리사니도 없는 날탕이지만,
(가리사니 : 사물을 판단한 만한 지각)
(날탕 : 아무것도 없는 사람)
저도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래저래 가슴이 아프고 스스럽네요.
(스스럽다 : 수줍고 부끄러운 느낌이 있다)
교수와 원장이 겨끔내기로 하는 기자회견도 가년스럽고,
(겨끔내기 : 서로 번갈아 하기)
(가년스럽다 : 몹시 궁상스러워 보이다. 보기에 가난하고 어려운 데가 있다)
떼꾼하며 조쌀하지 못한 황 교수와 노 원장을 보는 것도 너무나 힘듭니다.
(떼꾼하다 : 몹시 지쳐서 눈이 쑥 들어가고 생기가 없다)
(조쌀하다 : 늙었어도 얼굴이 깨끗하고 맵시 있다)
애끓고, 애끊는 아픔이 이런 건가 봅니다.
우련한 진실에 다가서고자
(우련하다 : 형태가 약간 나타나 보일 정도로 희미하다. 희미하게 겨우 보이다.)
이것저것 되작거려 동티 내 군것지게 만든 것 같은 언론이 밉기도 하면서,
(되작거리다 : 물건들을 요리조리 들추며 자꾸 뒤지다)
(동티 : 땅, 돌, 나무 따위를 잘못 건드려 지신(地神)을 화나게 하여 재앙을 받는 일. 공연히 건드려 스스로 화를 부름)
(군것지다 : 없어도 좋을 것이 쓸데없이 있어서 거추장스럽다.)
그래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기에...
버물린 두 과학자가 안타깝기도 하고...
(버물다 : 못된 일이나 범죄 따위에 관계하다)
불주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불주다 : 남에게 일부러 곤욕이나 해를 입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셈들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셈들다 :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가 생기다)
이번 일이,
터울대는 과학기술계에 찬물을 끼얹거나,
(터울거리다 : 어떤 일을 이루려고 몹시 애를 쓰다)
조라떨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조라떨다 : 일을 망치도록 경망스럽게 굴다)
이번 일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각다분하지만,
(각다분하다 : 일을 해 나가기가 힘들고 고되다)
이번 일을 너볏하게 잘 넘기고 마물러,
(너볏하다 : 몸가짐이나 행동이 번듯하고 의젓하다)
(마무르다 : 일의 뒤끝을 맺다)
국민 모두가 과학기술계를 그느르는 좋은 기회로 만들면 좋을텐데...
(그느르다 : 돌보고 보살펴 주다)
더불어서 과학기술계는 갈음질하는 좋을 기회로 삼으면 좋을텐데...
(갈음질 : 칼, 가위 따위의 연장을 날이 서게 가는 일)
정말로 가슴이 아프네요......
[죄와 벌]
머리가 어지럽네요.
과학을 한답시고, 기술자랍시고, 연구자랍시고,
논문이 조작이다 아니다, 줄기세포가 있다 없다는 것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네요.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크나큰 죄를 짓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당연히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죄와 벌...
오늘은 죄와 벌 이야기 좀 할게요.
흔히,
“너 그러면 죄 받는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이 말은 ‘죄’와 ‘벌’을 구별하지 못하고 쓰는 것입니다.
‘죄(罪)’는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로,
죄를 범하다/죄를 저지르다/죄를 짓다/죄가 많다처럼 씁니다.
‘벌(罰)’은
“잘못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주는 고통”으로,
엄한 벌/벌을 내리다/벌을 받다/벌을 주다/벌이 무겁다처럼 씁니다.
따라서,
“너 그러면 죄 받는다.”라는 말은,
“너 그러면(그런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죄는 짓고, 벌은 받는 겁니다.
당연히, 죄를 짓지 않으면 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이번 일이 꿈이라면 좋겠습니다.
방송이 미쳐서 엉뚱한 드라마 하나 만든 거라면 좋겠습니다.
신문이 돌아서 창작소설을 발표한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이 어딘가에 잘못 연결되어 혼자 날뛰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
[조바심]
어제에 이어 오늘도 황 교수님 이야기네요.
이제는 많은 분이 조바심을 버리고 차분하게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라고 하지 마세요.)
사실 조바심 갖고 덤벼봐야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10일에서 보름 정도 후면 결과가 나온다니,
진득하게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바심을 버리시라고 조바심 어원을 좀 말씀드릴게요.
‘조바심’에서 ‘조’는
오곡의 한 가지인 곡식으로,
밥을 짓기도 하고 떡, 과자, 엿, 술 따위를 만드는 원료입니다.
볏과의 한해살이 식물로 9월에 줄기 끝에 이삭이 나와 원통 모양의 가는 꽃이 피고 열매는 노란색의 작은 구형입니다.
‘조바심’에서 ‘바심’은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인 타작(打作)에 맞대는 순 우리말입니다.
따라서 ‘조바심’은 “조를 타작하는 일”이 되겠죠.
이 조는 잎이 어긋나 좁고 길게 생겼고, 귀가 질겨 떨어내기가 어렵습니다.
타작하기가 어려운 거죠.
그래서 조를 떨 때는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여기저기에 비비고 두드리고 문지르며 쳐댑니다.
게다가 낱알이 작고 가벼워서 한 곳에 모으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조를 타작하는 일은,
타작 과정이 조심스럽고,
마음먹은 대로 쉽게 떨어지지도 않으니,
조급해지고 초조해지기 일쑤인 거죠.
바로 이런 어원을 가지고 태어난 ‘조바심’이
지금은,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임. 또는 그렇게 졸이는 마음”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이죠.
이번 일의 진실이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바심을 버리고 진득하게 조금만 참으면
곧 진실을 알 수 있겠죠.
[논문 진위 여부 -->> 논문 진위]
설마 했는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결국 그 논문이 조작된거였군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아픈 가슴을 달래고자 다른 이야기나 좀 할게요.
뉴스를 들으니,
서울대 진상조사위원회가 ‘논문 진위’를 조사했다고 하네요.
‘논문 진위 여부’를 조사한 게 아니라...
‘진위 여부’는 옳은 표현이 아닙니다.
여부(與否)는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부’ 앞에 상반된 개념을 한꺼번에 가진 낱말을 쓰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생사(生死), 진위(眞僞), 성패(成敗) 같은 낱말 뒤에는 ‘여부’를 쓰면 안 되는 거죠.
생사, 진위, 성패라는 낱말이,
이미, 살거나 죽거나,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란 뜻을 담고 있는데,
그 뒤에 또 ‘여부’를 써서 ‘그러거나 그러지 않거나’라는 뜻을 덧붙일 필요가 없잖아요.
다시 말하면, ‘진위’ 속에 이미 ‘여부’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논문 진위 여부’를 조사한 게 아니라,
‘논문 진위’, 곧, 논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조사한 거죠.
조난자의 생사 여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조난자의 생사’를 모르는 거고,
연구의 성패 여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연구의 성패’를 모르는 거죠.
그러나
‘여부’ 앞에 상반된 개념을 한꺼번에 가진 낱말이 오지 않으면 ‘여부’를 써도 됩니다.
예를 들면,,
논문의 진실 여부를 검토했다/연구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줄기세포 존재 여부를 알고 싶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논문의 진실 여부를 검토했다’는 논문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검토한 것이고,
‘연구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는 연구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에 달렸다는 말이고,
‘줄기세포 존재 여부를 알고싶다’는 줄기세포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다는 말이잖아요.
정리하면,
‘여부(與否)’는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그 낱말 앞에,
‘그러거나 그러지 않다’는 뜻이 있는, 곧, 상반된 개념을 한꺼번에 가진 낱말을 쓰면 안 됩니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매조지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