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6] 우리말) 바끄럽다/서머하다

조회 수 6807 추천 수 96 2010.04.16 10:29:28

뭐가 잘못됐는지는 몰라도
안타까운 죽음 앞에 서머할 뿐입니다.
(
서머하다 : 미안하여 볼 낯이 없다.)

 

안녕하세요.

어제 침몰한 천안함이 20일 만에 물 밖으로 끌어올려져 실종자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

이 일을 보면서 왜 이리 바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
(
바끄럽다 : 일을 잘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남을 대할 면목이 없거나 떳떳하지 못하다
.)

뭐가 잘못됐는지는 몰라도

안타까운 죽음 앞에 서머할 뿐입니다.
(
서머하다 : 미안하여 볼 낯이 없다
.)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낸 편지입니다.




[
우리말이 아니라 제 이야기입니다
]

안녕하세요
.

갑자기 추워졌네요
.

오늘은 오랜만에 제 개인 이야기 좀 할게요
.

실은 어제저녁에 딸내미 재롱잔치에 다녀왔습니다
.
부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오셨더군요
.
저는 그 잔치를 차마 보지 못하고 맨 뒤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
남이 보지 못하는 맨 뒷자리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 눈물을 즐겼습니다
.
웃다가 울면서 맘껏 즐겼습니다. 저는 제 자식의 재롱잔치를 처음 봤거든요
.
웬 울음이냐고요
? ^^*

언젠가 제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이

"
젊은 사람이 그렇게 누선이 약해서 어떻게 큰일을 하겠나?"라고 핀잔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제 딸아이도 텔레비전 보면서 우는 저를 보고
,
"
아빠 또 울어?"라고 말할 정돕니다
.
저는 눈물이 참 많습니다
.
제가 눈물이 왜 많아졌는지를 오늘 말씀드릴게요
.

그리고 우리말편지에서 아들 이야기는 거의 안 하고

딸 이야기만 가끔 하는데 왜 그런지도 오늘 편지를 읽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

몇 년 전에

제가 불임으로 고생하다 애를 가졌을 때

한 게시판에 올린 글을 붙입니다
.
좀 깁니다
. ^^*

그 애가 벌써 다섯 살이 되었고
,
저는 오늘 그 애와 양재동 꽃시장에 놀러 갑니다
. ^____^*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2003
1 21일 저녁
....
회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아는 분으로부터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어요
.
"
여보세요
!"
"
임신이랍니다. 임신
!"
"
? 뭐라고요
?"
"
. 임신이라니까요
?"
"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 "
.
.
.
.

저는 태어나서
,
저와 관련된 임신이라는 낱말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
어찌나 가슴이 떨리고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던지
....
제가 말을 못 잇고 있으니
,
상대방이 계속해서 "여보세요"를 외치고 계셨던 겁니다
.

그날 오전에
,
제가 아는 분께 전화들 드렸어요
.
아침에 병원에서 이러저러한 연락을 받았는데
,
내용을 잘 모르겠으니
,
산부인과 의사인 사모님께 여쭤봐 달라고
....

그 전화가 저녁에 온 겁니다
.
임신이라고
....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들은 말 중 가장 기쁜 말이었습니다
.
그분은 필시 큰 복을 받으실 겁니다
.
남에게 이렇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셨는데
,
어찌 복 받지 않겠어요
. ^^*



그동안 저는

12
대 종손, 7대 독자, 1 7녀의 집안에서
,
늦깎이로 결혼한데다가
,
결혼 뒤 6년 동안 애 소식이 없어서

이러저러한 애간장을 많이 태웠거든요
.

그동안 좋다는 병원 다 다녀봤고
,
애 낳는다는 약도 다 먹어봤고
,
달을 보고도 기도하고
,
별을 보고도 기도하고
....
용하다는 무당까지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

이제는 되겠지
,
이번에는 성공하겠지
....
노심초사 생각하는 것은 하나뿐
....
그러다보니
,
친구관계도 소홀해지고
,
친척들과도 소홀해지고
,
사소한 일로 아내와 다투게 되고
,
지나가는 애만 봐도 돌아서서 눈시울 적시고
....

기다림에 지치고
,
마음은 약해지고
,
속까지 허 해져서 의욕마저 없더군요
.

기다림의 고통을 잊고 여유를 찾고자
,
여기저기 일을 찾아 헤매도 보고
,
미친놈처럼 일에 매달려도 보고
,
산에 올라 미친 듯이 소리도 질러보고
....
.
.
.


2
년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
산부인과라는 곳에 아내와 같이 처음 발을 들여놨습니다
.
그동안은

둘 다 건강하니 언젠가는 생기겠지 하며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생활하다가
....

집 근처에 있는 병원인데
,
가자마자 이런저런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
자기가 이런 경우 많이 봤다고
,
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같이 해 보자더군요
.
그래서 그날부터 그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죠
.
그러나 한 달, 두 달... 달이가고 해가 가도

전혀 달라지는 게 없는 겁니다
.
그런데다가 작년 초에는 담당의사가 사직했으니
,
다른 사람에게서 진료를 받든지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래요
...
이런
....C8
제가 재떨이로 아버지를 무시한 의사의 대갈통을 날려버린 화려한 경력이 있는데
,
그때 일이 순간 떠오르더군요
...
근데 이 말을 해 준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서 참고 그냥 나왔죠
...
나이도 먹었고
...

그러고 집에 있다 보니 또 몇 달이 훌쩍 지나가더군요
.
작년 여름
....
이번에는 큰 병원으로 가보자
,
해서
,
근처에 있는 불임 전문병원인 평촌 마리아 병원을 찾아갔죠
.
여기서도 이런 조사 저런 조사 다 해보고 나서
,
드디어 시험관으로가자고 결론이 났어요
.
시험관 시술 전에

아내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고자 이러저런 약을 먹고
,
배란 유도제 주사 맞고
....
저 또한 건강한 정자 추출을 위해 술, 담배 다 끊고
....

작년 11 15
.
드디어
,
정자와 난자를 채취했습니다
.
근데

아내에게서 난자가 무려 32개나 나왔어요
.
여자들이 보통 한 달에 한 개씩 나오는데
,
아내는 남들 3년 동안 나올 게 한꺼번에 다 나온거죠
....
그러니 그 몸이 오죽했겠어요
.
일단은 수정을 시키고
,
5
일 동안 배양한 뒤 아내 몸에 이식하기로 했는데
,
이런.... 아내가 복수가 찬 겁니다
.
하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으니
....

그래서, 수정란은 냉동을 시키고
,
다음 달을 기약하기로 했죠
.
수정란을 뜀박질 시켜서 똘똘한 녀석 열 개를 골랐다더군요
.
그 열 개만 냉동한 거죠
.
수정란을 냉동시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기분 참 묘하데요
.
어찌 되었건, 나와 내 아내의 몸에서 나온 생명체인데
,
그 녀석들을 냉동시킨다고하니
....

다음달에 정상적으로 생리가 끝나고
,
병원에 다시 갔어요
.
그게 작년 12월이죠
.
근데 이번에는 또 뭐가 어쩌고 어째서 안 된다는 겁니다
....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데요
.
그런 말을 해 주는 의사가 미워지더라고요
.
안타까운 마음에
,
친절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는 의사보다

미안한 마음에 무표정하게 처방전을 건네주는 간호사가 차라리 더 낫더라고요.
누굴 미워할 수도 없고, 누굴 원망할 수도 없고
,
차라리 그럴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

다시 또 한 달을 기다렸죠
.
그러면서 해가 바뀌고
....
1 11일 드디어 아내 몸에 수정란을 이식하기로 했습니다
.

그 전부터
,
아내는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주사를 맞았어요
.
저는 출근 전에 근처에 있는 퇴역한 간호사 집에 아내를 태워다 주고
,
주사 맞고 힘없이 걸어나오는

아내를 다시 집에다 바래다주고 출근하는데
,
정말 출근하기 싫더군요
.
매일같이 그 짓을 몇 개월을 했는지
...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
저녁에 퇴근해서는

벌집이 된 아내 엉덩이를 주물러주며
,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
세상 원망도 참 많이 했고요
.

수정란 이식을 위해

냉동된 열 개를 해동시켜보니,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해롱해롱하는 녀석들 빼고
,
정신 제대로 차린 녀석들이 5개였데요
.
그 녀석들 다시 뜀박질시켜
,
세 개를 골라 아내 몸에 넣었다더군요
.
수정란 이식 뒤 오전에 병원에서 쉬다가
,
점심때 제가 데리고 왔어요
.

12
층 병원에서 3층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더군요
.
아마도 기도 중이었겠죠
....
그 모습을 보니
,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
피터져라 입술 꼭 깨물고

다행히 아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

나를 만나지 않았으며
,
이런 고생하지 않고 잘 살텐데
....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기에
....
다음 생에서는 나를 만나지 마오
.
내가 당신의 종이 되어서
,
당신 사랑 천만분의 일이라도 갚겠소
....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
둘 다 아무 말이 없었어요
.
무슨 말이라도 하면 부정탈까봐
....

그날 퇴근하는 길에 꽃집에 들러 장미 한 송이를 샀습니다
.
예쁘게 포장하여 아내 손에 건네는데
,
아무 말도 안 나오더군요
.
....

병원에서 수정란을 이식하고
,
일주일 뒤에 피검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
1
20일 피검사 예정
.
그 검사 결과를 보면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대요
.
근데, 그 일주일이 왜 그리 길던지
....
회사일도 손에 안 잡히고
....
누구를 만나는 것도 싫고
....

드디어 일주일 뒤
,
1
20, 어제, 피검사를 했습니다
.
간단히 피만 빼고 나왔죠
.
그 결과를 다음날 아침에 알려준대요
.
아내를 집에 데려다 주고
,
사무실에 나왔는데
,
무슨 일이 잡히겠어요
?
한 시간이 그처럼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어요
.

오후에 연가를 내고
,
무작정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
인천 가는 산업도로에 올라타 무작정 밟았죠
....
아무 생각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
여기저기 정처 없이 헤매다 정신차려 보니
,
어느 산 밑이더군요
.

문득
,
얼마 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
아내와 저는 녹차를 좋아하는데
,
둘이서 오붓하게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원목으로 된 찻상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

근처 목공소 몇 군데에 들러서
,
찻상으로 가공할 만한 원목 하나를 얻었습니다
.
그걸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와
,
그라인더로 열심히 갈았죠
.
모든 잡념이 다 없어지더군요
.
도 닦는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갈고 닦았습니다
.
갈면서 세상 원망도 원 없이 했고
,
닦으면서 기도도 원 없이 했고
....

한 시간만에 멋진 찻상 하나를 만들어서
,
그날은 일찍 퇴근하여 집에 들어갔습니다
.
찻상을 보더니 아내가 환하게 웃는 거예요
. ^^*
근래에 아내가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 처음 봤어요
.
저보다 더 힘든 게 아내잖아요
.
삶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
진작 해 줄걸.... 왜 그런 정성이 없었는지
....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
그 찻상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더군요
. ^^*
내가 출근하고 나면
,
저 찻상에서 아내가 차 한 잔을 하며 시름을 달래겠지
....
가끔은 내 생각도 할까
? ^^*

피검사 다음날 아침. 오늘
,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지더군요
.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올 리가 있나요
.
8
시가 넘자마자 바로 병원에 전화했습니다
.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고
....
아내가 전화하는 동안
,
옆에서 양말 신으면서 그걸 듣고 있는데
,
왜 그리 답답하던지
....

결과는 수치
147....
임신일 가능성이 있음
....
그 수치가 뭘 뜻하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어요
.

전화를 끊고

둘 다 아무 말 못하고
,
멍하니 서로 쳐다보기만 했어요
....
눈물도 안 나오더군요
.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
그저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뿐
....

이제 또 일주일을 기다려서
,
피검사를 다시 해 봐야 한다는군요
.
그래야 임신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데요
.
그리고 나서
,
또 일주일 뒤 다른 검사를 해서
,
아기집이 생긴 것을 봐야 안심할 수 있다는군요
.
그게 임신이 된 거죠
.

남들은 임신인 줄 알게 되면 그게 곧 한두 달인데
,
저는 임신 일주일이라니
....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요
.

물론
,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
다른 사람과 달리 어렵게 얻었으니
,
그 애가 이 세상의 빛을 볼 때까지
,
,
정성스럽게 기다릴 겁니다
.
조심조심
,
한 걸음 한 걸음 정성들여 걷겠습니다
.

남들에게는 쉬운 일이

저에게는 이렇게 시련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
지금보다 더 겸손해지고
,
지금보다 더 신중해지고
,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라는 신의 계시겠죠
....

어느 불임 부부가 한 게시판에 썼다는 글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
"
어느 우주로부터 우릴 향해 열심히 다가오고 있는 아가에게

빨리오라 재촉하지 않겠습니다
.
왜냐면..그 여리고 작은 발로 제깐엔 열심히 아주 열심히

오고 있는 중이니까요
.
좀 느리긴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엄마 품을 제대로 찾아오리란 걸 믿으니까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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