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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에누리]
어제 오후에 가족과 함께 대형 시장에 갔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 쎄일’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모두 ‘20% 에누리’라고 썼네요.
한 5-6년 전입니다.
어떤 술자리에서 제가,
“‘세일’이라는 이상한 말을 쓰지 말고 ‘에누리’를 쓰자”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이,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세계화가 안 된다.
그럼 비행기도 날틀이라고 하고 이화여대도 배꽃계집큰학교라고 해라.
그따위 소리 잘못하면 북한 따라간다는 말 들으니 조심해라.
이상한데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농업 하는 사람이 무슨 한글 나부랭이냐.
그렇게 고리타분해서 어디에 쓰겠냐?
......
그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서 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오늘은 ‘에누리’말씀을 좀 드릴게요.
‘20% 에누리’가 무슨 말이죠?
1만 원짜리 물건을 20% 깎아 8천
원에 준다는 말이죠?
맞죠?
만약에,
1만 원짜리 물건에 ‘20% 에누리’라고 붙여 놓고,
1만2천 원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물건을 판 사람은 사기꾼이겠죠?
아니요.
그 사람은 사기꾼이 아닙니다.
1만 원짜리 물건에 ‘20% 에누리’라고 붙여 놓고,
8천 원을 받아도 되고, 1만2천 원을
받아도 됩니다.
우리말 ‘에누리’는 정반대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사전에서 ‘에누리’를 찾아보면,
1. 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 또는 그 물건 값.
2. 값을 깎는 일.
3. 실제보다 더 보태거나 깎아서 말하는 일
4. 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주는 일
로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누리가 없는 정가(正價)이다.
인심이 순후하여 상점에 에누리가 없고 고객이 물건을 잊고 가면 잘 두었다가 주었다.
에 나오는 ‘에누리’는 “물건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을 말하고,
정가가 만 원인데 오천 원에 달라니 에누리가 너무 심하지 않소?
에누리를 해 주셔야 다음에 또 오지요.
에 나오는 ‘에누리’는 “값을 깎는 일”이고,
그의 말에는 에누리도 섞여 있다.
정말 소중한 얘기는 그렇게 아무한테나 쏟아 놓지 않는 법이야. 설사 하더라도 에누리를
두는 법이지.
에 나오는 ‘에누리’는 “실제보다 더 보태거나 깎아서 말하는 일”이며,
일 년 열두 달도 다 사람이 만든 거고 노래도 다 사람이 만든 건데 에누리없이 사는 사람 있던가?
에 나오는 ‘에누리’는 “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주는 일”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인이 에누리한 물건을 손님이 에누리해서 샀다면 그것은 본전입니다.
재밌지 않나요?
어쨌든,
시장에 붙은 ‘20% 에누리’는 정가보다 20% 깎아준다는
말이지,
설마, 다른 가게보다 20% 비싸다는
뜻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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