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6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그게 희귀병이라고요?]
어제 제가 걸린 병을 여쭤봤더니 많은 분이 걱정(?)을 해 주시네요. 그 병은 쉽게 고칠 수 없는 난치병이라는 분도 계시고, 희귀병이니 잘 지키라는 분도 계시고... 오늘도 이어서 병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SBS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장애와 희귀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아와 가난 때문에 아이의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정에 그들에게 필요한 전문가 그룹을 연계하여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게 그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입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게 '희귀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환자에게 '희귀병'이라고 하면 그건 환자를 우롱하는 겁니다. '희귀'는 드물 희(稀) 자에 귀할 귀(貴) 자를 써서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는 뜻입니다.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표 같은 게 희귀한 것이죠. 그럴 때 쓰는 낱말인 '희귀'를 써서 '희귀병'이라고 하면, "세상에 별로 없는 귀한 병"이라는 낱말이 돼버립니다. 아무리 귀하기로서니 병까지 귀하겠어요?
백 보 천 보 양보해서 의사가 연구목적으로 세상에 별로 없는 어떤 병을 찾는다면 그건 희귀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치료약도 없고 치료방법도 모르는 병에 걸린 사람에게 희귀병에 걸렸다고 하면 그게 아픈 사람을 우롱하고 조롱하고 비꼬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굳이 그런 낱말을 만들고 싶으면 '희소병'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겁니다. '희소'는 드물 희(稀) 자에 적을 소(少) 자를 써서 "매우 드물고 적음"이라는 뜻이므로 '희소병'은 말이 되죠.
보건복지부는 "저소득층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업일 겁니다.
바로 이런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국가기관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희귀병이라뇨... 그렇지 않아도 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별로 없는 귀한 병"을 가졌다고요? 그렇게 귀한 병이라면 힘없는 국민은 안 가져도 좋으니 보건복지부나 많이 가져가시죠. 희귀병은 보건복지부에서 다 가져가시고, 우리 국민에게는 '희소·난치성질환'이 아니라 '드물고 낫기 어려운 병' 치료나 많이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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