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6년 이전에 보낸 편지입니다.
[상세한 내역? 자세한 내용? 자세하게?]
날씨가 참 좋죠?
요즘 저는 국회의원 요구자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자료를 요구하는 게 많아서요.
국민의 대표가 행정부를 감사하기 위해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걸 뭐라는 게 아니라, 제가 꼬집고 싶은 것은 자료를 요구할 때 쓰는 몇 가지 낱말입니다. 대부분 어떤 자료를 요구하면서, 'ooo에 대한 자세한 내역을 제출...'이라고 합니다.
내역(內譯, うちわけ[우찌와께])은 일본어에서 왔습니다. '내역'이라는 낱말만 봐도 일본 냄새가 확 풍기지 않나요?
좀 황당한 일은, 국립국어원에서 이 '내역'을 다듬는답시고 '명세'라고 해 놓은 겁니다. 근데 이 명세도 明細(めいさい[메이사이])라는 일본어거든요.
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명세의 뜻을 풀면서 "분명하고 자세함"이라고 해 놨습니다. 여기서 분명(分明, ぶんめい[붕메이])과 자세(仔細·子細, しさい[시사이])도 일본말입니다. 국립국어원도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보면, 일본말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시겠죠?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런 일본어투 낱말을 하나도 쓰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없애야할 낱말이기에 뭐가 일본어투 낱말이고 뭐가 아름답고 깨끗한 우리말인지는 알아야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자료를 요청할 때, 'OOO에 대한 자세한 내역을 제출...'이라고 하지 않고, 'OOO을 꼼꼼하게 챙겨서 보내주세요.'라고 하면 어떨까요? 한자나 일본어투 낱말을 쓰지 않아서 국회의원의 위신이 떨어질까요? 그럴까요? 진짜로? 참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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