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6년 이전에 보낸 편지입니다.
[유감에 유감]
어제치 조선일보(2006. 9. 26.) A2 맨 아래 오른쪽에 보면, '바로잡습니다'라는 꼭지의 작은 기사가 있습니다. 내용은 '22일자 A1면 기사 중 '검찰총장이 21일 공개적으로 유감(有感)의 뜻을 밝히고'에서 '유감'의 한자는 '有感'이 아니라 '遺憾'이므로 바로잡습니다.'입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좋게 한글로 쓰면 될 것을 뭐 잘 보일 게 있다고 굳이 한자를 덧붙여서 그런 망신을 자초하는지... 이런 게 바로 멍청한 짓입니다.
국어사전을 뒤져보면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으로, 유감을 품다, 유감의 뜻을 표하다, 내게 유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처럼 쓴다고 나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유감천만(遺憾千萬)을 실어놓고, "섭섭하기 짝이 없음"이라 풀어놨습니다. 곧, 유감은 어떠한 상황이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 있을 때 쓰는 말이라는 겁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 그런 풀이가 있으니, 떨떠름하기는 해도 써도 되는 말이기는 합니다.
좀 삐딱하게 나가볼까요? 유감은 흔히 정치인들이 쓰는 말입니다. 이 유감은 앞에 보인 것처럼 내가 남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을 때도 쓰고, 남이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을 때도 씁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 유감이란 말을 언죽번죽 지껄이며 서로 대충 봐주고 일을 흐리멍덩하게 넘기는 것이죠. 이런 것을 보면 한자말은 남을 속이고 자기를 감추는 데 잘도 쓰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한자를 쓰는 게 무슨 대단한 것이나 된것처럼 행세하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두루뭉술하게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사과하면 됩니다. 일부러 이상한 한자말을 써서 어떻게 보면 사과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자기 위신을 세우려 하면 안 됩니다.
저 같으면 유감을 이렇게 바꿔쓰겠습니다.
우리말 홀대, 외래어 홍수 유감 -> 우리말 홀대, 외래어 홍수 씁쓸 대법원장 '검찰.변호사 비하성 발언'관련 유감표명 -> 대법원장 '검찰.변호사 비하성 발언'관련 사과 국민에게 비쳐질 수 있어 유감으로 생각한다 -> 국민에게 비칠 수 있어 미안하게 생각한다 자신들의 느낌에 의해 기사를 쓴 것은 유감 -> 자신들의 느낌에 따라 기사를 쓴 것에 불만 보도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 보도에 대해 섭섭함을 나타내며 유감을 표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과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삿속 시정 유감천만 -> 장삿속 시정 떨떠름
요즘 우리말편지가 자꾸 길어지네요. 될 수 있으면 짧게 쓰려고 하는데, 글을 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길어집니다. 할 말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우리말편지가 길어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니, 아니, 다시 할게요. 저도 모르게 우리말편지가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