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7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옷깃을 스치면 인연?]
오늘 낮은 좀 따뜻할 거라고 하네요. 요즘 저는 사람을 참 많이 만납니다. 저 같은 사람 만나봐야 나올 게 아무것도 없는데......
흔히 사람을 만나면서 하는 말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데... 앞으로 잘 해 봅시다... 뭐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죠?
이 말은 뭔가 좀 이상합니다. 옷깃은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입니다. 옷깃을 세우다, 옷깃을 바로잡다처럼 씁니다. 쉽게, 고개 뒤와 귀밑에 있는 게 옷깃입니다.
그럼 언제 이 옷깃이 스칠 수 있죠? 그냥 지나가다 이 옷깃이 스칠 수 있나요?
지나가다 누군가 제 옷깃을 스치면 저는 막 화를 낼 것 같습니다. 뭐 이런 삐리리가 있냐면서...
우리가 지나다니면서 복잡한 길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 스칠 수 있는 것은, 옷깃이 아니라 옷자락이나 소매입니다. 옷자락은 "옷의 아래로 드리운 부분"으로 옷자락이 길다, 아이가 어머니의 옷자락을 붙잡고 떼를 쓴다처럼 씁니다. 소매는 "윗옷의 좌우에 있는 두 팔을 꿰는 부분"으로 짧은 소매, 소매 달린 옷, 손등까지 덮은 긴 소매, 소매로 눈물을 닦다처럼 씁니다. 곧, 옷 끝에서 나풀대는 곳이
따라서, 우연히 부딪칠 수 있는 곳은 옷자락이나 소매지 결코 옷깃이 아닙니다. 옷깃은...... 남녀가 어떻게 하면 옷깃을 스치게 할 수 있죠? 거 참......^^*
아마도 우리 조상님들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면서 이런 익은말(속담)을 만드셨는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남여가 '옷깃을 스친' 뒤,(그게 그리 쉽지 않고...) 이제는 '인연'이 되어 버렸으니,(어쩔 수 없이...) 잘 알아서 하라는 말을 에둘러 그렇게 한 게 아닐는지......
그냥 웃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저와 옷깃을 스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 식구 말고는...^^*
조선시대 진묵(震默)스님의 게송이 생각나네요.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로 삼으며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를 술동이로 만들어 크게 취해 옷깃을 떨쳐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맷자락 곤륜산에 걸리지나 않겠는가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居然仍起舞 却嫌長袖掛崑崙
진묵 스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마셔서 정신이 몽롱해지면 '술'이요, 마셔서 정신이 맑아지면 '차'라.
저는 차를 좋아합니다. 술은 싫어합니다.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