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7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기울이다와 기우리다]
안녕하세요.
언젠가 제 병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보다는 맞춤법 틀린 게 눈에 먼저 띄는 이상한 병이 있다고...
그 병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납니다. 술을 마실 때는 그 자리를 즐겨야 하는데, 술잔을 '기우리'는 게 맞는지 '기울이'는 게 맞는지가 떠오르니... 제 병도 참 심각합니다. 쩝...
"비스듬하게 한쪽이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는 뜻의 낱말은 '기울다'입니다. "마음이나 생각 따위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다."는 것도 '기울다'입니다. 이 기울다의 사동형이 '기울이다'입니다. (북한에서는 사동형을 시킴형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전에 '기우리다'는 없습니다. 예전에 쓰던 낱말입니다. 비스듬하게 비뚤어지거나 마음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기울이다'입니다. 따라서, 기울이고, 기울이니, 기울이면, 기울여, 기울이지처럼 쓸 수 있지, 기우리고, 기우리니, 기우리면, 기우려, 기우리지처럼 쓰면 안 됩니다. 노력을 기울이다, 술잔을 기울이다, 관심을 기울이다, 앞으로 기울이다, 정성을 기울여...처럼 쓰셔야 합니다.
'기울이다'의 큰말이 '갸울이다'입니다. '기울이다'의 센말은 '끼울이다'이고 '갸울이다'의 센말은 '꺄울이다'입니다.
저는 어제 초저녁에는 술잔을 기울였지 기우리지 않았습니다. 근데 나중에는 저도 모르게 우럭우럭한 얼굴로 술잔을 갸울이고 있더군요. 옆을 보니 친구들도 해닥사그리해져 술잔을 꺄울이고 있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보태기) 국립국어원 누리집 묻고 답하기에 들어가 보니, 어떤 분이 '관심을 기울이다', '귀를 기울이다', '술잔을 기울이다'는 모두 일본어에서 온 말로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이냐고 물었습니다. 국립국어원 답변은 '관심을 기울이다'가 일본어에서 온 것인지는 조금 더 검토해 보아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관심을 기울이다'가 썩 우리말다운 표현은 아니므로 '~에 관심이 있다' 혹은 '~에 관심을 두다' 정도로 고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만, 우리말 문장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는 어색한 번역투가 아니라면 굳이 잘못이라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라고 답변하셨네요.
오늘은 이상하게 편지를 길게 쓰고 싶네요. 여러분과 닿는 끈을 놓기 싫어서... ^^* 앞에서, "요즘 우리나라 사전에 '기우리다'는 없습니다"라고 했는데요. 사전(辭典)을 순 우리말로 하면 뭐가 될까요? 문제입니다. 맨 처음 맞히시는 분께 선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실은 그 답은 없습니다. 사전을 뜻하는 순 우리말은 없습니다. 다만, 주시경 선생님 등이 1910년 무렵에 조선 광문회에서 편찬하다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이름을 요즘 사람들이 '사전'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