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7년에 보낸 우리말편지입니다.
[양반다리와 책상다리]
어제는 애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좀 일찍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래 봐야 10시가 넘었지만... 어제 집에 가면서 내일 아침 우리말 편지 밥상을 무엇으로 차리나를 고민했는데, 집에 가자마자 MBC가 도와 주더군요. 히트라는 연속극에서 "용의자를 석방하고..."라는 말이 제 귀를 긁더군요. 그래, 내일 밥상은 '용의자'로 차리자...^^*
씻고 나와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이번에는 KBS에서 도와주더군요. 상상플러스에 나온 몇 가지 실수가 제 눈을 괴롭혔기에 오늘은 그것으로 밥상을 차릴게요.
먼저, 뭔가를 설명할 때, '이것은 무엇입니다. 즉, ....입니다.'라고 풀면서 '즉'을 쓰는데, 이는 '곧'으로 바꿔 쓰시는 게 좋습니다. 즉(卽)이나 곧이나 뜻이 거의 같다면 우리말을 쓰는 게 낫잖아요. 내친김에, 일반적으로 접속 부사 다음에는 반점을 찍지 않습니다만, '단, 즉, 곧' 따위 뒤에서는 반점을 찍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나오는 화면에서 "깜짝 놀래라"라는 자막이 나왔는데, 놀래라가 아니라 놀라라입니다. 놀래다는 놀라다의 사동형으로 남을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문제를 맞힌 사람이 주전부리를 가져가면서 "화전은 내꺼야"라고 했고, 자막도 그렇게 나왔는데, '내꺼야'가 아니라 '내 거야'가 맞습니다.
출연자들이 방석을 타고 달리는 겨루기를 하면서 '양반다리 방석 달리기'라고 했습니다. 뜀박질이나 달음박질이 아니면서 '달리기'를 쓴 것은 봐줄 만 한데, '양반다리'라는 낱말은 안 됩니다. "한쪽 다리를 오그리고 다른 쪽 다리는 그 위에 포개어 얹고 앉은 자세", 전라도 말로 헹감치는 꼴은 양반다리가 아니라 책상다리입니다. 듣기에 따라 책상다리보다 양반다리가 더 낫게 들릴지 모르지만, 양반다리는 국어사전에 없는 낱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런 생각 하시죠. 우리말 편지를 쓰는 저 인간도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 그냥 편하게 보고 웃으면 될 것을 왜 저리 따지나... 인간 참 꼬장꼬장하네...
그런 생각하셨죠? 맞죠?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웃고 떠들 때는 어떤 말을 쓰건 상관 없을지 모르지만, 방송에서는 안 됩니다. 방송과 신문은 언제나 옳고 바른말만 써야 합니다.
제가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엉터리 말을 하면 한 명에게만 나쁜 짓을 한 것이지만, 언론에서 엉터리 말을 쓰면 우리나라 백성 5천만 명에게 나쁜짓을 한 겁니다. 그래서 언론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언론에서 일본말이나 한자투를 버리고 우리말을 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르게 쓰려는 노력입니다.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