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요즘 수능시험문제로 말이 많네요. 이번에도 잘못 낸 문제가 있나 봅니다. 어지러운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 걱정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많은 학생이 "난이도 조절에 문제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언론에서는 "난도가 높은 문제가 많았다."고 보도하네요.
잘 아시는 것처럼 '난이도'는 "어려움과 쉬움의 정도"입니다. 난이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교육하다, 시험 문제의 난이도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처럼 씁니다. 이를 '난이도가 어렵다'고 하면 말이 안 됩니다. '쉽고 어려움의 정도가 어렵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난이도'니 '난도'니 하는 말보다는 이번 문제는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를 골고루 냈다, 쉽고 어려운 정도를 잘 조절했다, 어려운 문제가 너무 많았다처럼 쉽게 풀어 쓰는 게 좋다고 봅니다.
한자를 배워야 우리말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은 틀렸다고 봅니다.
아래는 한글문화연대 누리집에 있는 이건범 님의 글을 따온 겁니다. http://www.urimal.org/448 한자를 모르면 낱말 뜻을 모른다는 주장은 옛날 신문처럼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자고 요구하는 국한문 혼용론자들이 퍼뜨린 미신이다. 특히 산부인과 의사나 안중근 의사의 ‘의사’처럼 소리가 같고 뜻이 다른 말은 한자로 적지 않으면 뜻을 혼동하게 된다고 핏대를 세우는데, 이런 대목에서 사람들이 혹하기 쉽다.
“인사과장은 사장님 앞으로 달려가 인사를 했다”라는 문장에서 앞뒤의 ‘인사’를 한글로만 적어놓으면 헷갈린다고 하니 국한문 혼용으로 적어 보자. “人事과장은 사장님 앞으로 달려가 人事를 했다.” 고약하게도 두 낱말은 한자마저 같다. 국한문 혼용론자 가운데 이 문장의 뜻을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두 낱말의 차이를 알아냈을까? 당연히 앞뒤 문맥을 보고 알아채는 것이다. 소리만 나오는 라디오를 들을 때도 산부인과 의사와 안중근 의사를 혼동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의 엉터리 주장과 다르게, ‘한자를 알면 낱말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평범한 시민들의 평범한 믿음이다. 사랑 애와 나라 국을 알면 애국이 곧 나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식이다. 실제로 한자음에 붙어 있는 뜻이 한자어의 뜻을 추적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한자어 낱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한자 지식이란 한자를 쓰거나 읽을 줄 아는 지식이겠는가, 아니면 한자의 뜻에 관한 지식인가? 당연히 한자의 뜻에 관한 지식이다. 그러니 애국과 애족의 ‘애’가 모두 사랑이라는 같은 뜻을 지닌 한자라고 알면 되지 반드시 ‘愛’를 쓸 줄 알아야 한다거나 한자로 적어놓고 읽게 강제할 까닭은 없다. 한자를 쓸 줄 알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낱말 이해에 차이가 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믿음에도 꽤 큰 함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애인’이라는 말의 사랑은 ‘애국’의 사랑과 결이 몹시 다르고, ‘창문’은 낱낱의 한자가 지닌 뜻을 합치면 다시 ‘창문’이다. 게다가 ‘재물’이라는 한자어는 재물 재에 물건 물이라는 한자의 조합인데, 낱낱의 한자 뜻을 다시 분해해도 재물 재에 물건 물, 물건 물에 물건 건이라 무한한 동어반복만 일어난다. 심지어 ‘선생’은 먼저 태어난 사람이고 ‘제자’는 아우의 아들이 되니, 한자의 뜻을 기계적으로 묶어서 낱말의 뜻에 다가가려는 태도는 게으르고 위험한 공부법이다. 더군다나 ‘사회’나 ‘회사’, ‘미분’과 ‘적분’처럼 낱말 뜻의 껍데기 정도만 표현하는 한자어도 숱하다. 한자를 아는 게 낱말 뜻 이해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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