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8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제가 누구냐고요?(2)]
안녕하세요.
오늘도 제 이야기 하나 할게요.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것으로...^^* 제가 언제부터, 왜 우리말 편지를 보내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2003년 여름부터 우리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날마다 보내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냈습니다. 우리말 편지를 보내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할게요.
우리말 편지를 처음 보낸 2003년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는 연구원이다 보니 외국 책이나 논문을 자주 봅니다. 그래서 제 전공분야만큼은 웬만한 영어 원서나 논문, 일본어 원서나 논문은 사전 없이도 별 지장없이 봅니다. 아무래도 전공분야다 보니 보는 대로 눈에 잘 들어옵니다. 뜻도 쉽게 파악하죠. 미국에서 살다 보면 길 지나가며 보는 것도 꼬부랑글자요, 책상 앞에 와도 꼬부랑글자만 있습니다. 처음에는 헷갈리지만 좀 지나면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가끔 우리말로 된 책을 보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돕니다.
2003년 여름 어느 날, 학과사무실에서 영어 보고서를 봤는데 최신 내용으로 제가 일했던 한국으로 보내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학과장 허락을 받고 그 보고서를 받아와서 번역에 들어갔습니다. 이왕이면 보기 쉽게 해서 보내드리는 게 좋잖아요.
자리에 와서 보고서를 전체적으로 죽 훑어보니 정말로 좋은 내용이고 최신정보가 많았습니다. 숨고를 틈도 없이 바로 번역해 나갔습니다. 키보드 왼쪽에 보고서를 놓고 눈으로 읽으면서 바로 타자를 쳐 나갔죠. 제가 타자치는 속도가 좀 빠릅니다. 대학 때는 1분에 500타까지도 쳤으니까요. ^^*
문제는 그때부터입니다. 눈으로 보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술술 잘 나갔는데, 이를 막상 우리말로 바꾸려고 하니 말이 잘 안 풀리는 겁니다. 영어 문장을 몇 번씩 봐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몇 번씩 읽어도 이게 영 어색한 겁니다. 영어 보고서를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이해하는 데는 몇 시간 걸리지 않았는데, 이 보고서를 번역하여 우리말로 바꾸는 데는 열흘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번역을 했는데도 말이 어색합니다. 매끄럽지 않아요. 맘에 안 들고... 아무리 읽어봐도 차라리 영어 원문을 그냥 보내주는 게 받는 사람이 이해하기 더 편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번역한 내용을 보내지 않고 영어 원문을 그대로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내가 늘 쓰는 우리말과 글이지만 내 머릿속에 든 것을 글로 나타내기가 이리도 힘들구나...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이고, 쓰고싶은 대로 끼적거렸지만 그게 제대로 된 게 아니었구나... 그저 내가 뭐라고 하건 남들이 대부분 알아들었기에 문법이나 체계도 없이 지껄였구나... 그러고 보니 내가 우리말을 공부한 적이 없네... 학교다니면서 국어시간에 문법을 공부한 게 다네...
그날 바로 인터넷으로 국어책을 주문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책 주문하면 무척 비쌉니다. ^^* 그래도 주문했죠. 남에게 보이고자 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내가 창피해서 얼굴 벌게진 채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때 주문한 책이 우리말 죽이기 우리말 살리기, 우리말답게 번역하기, 우리말의 속살 이렇게 세 권입니다.
며칠 기다려 배달된 책을 읽는데 책을 보면 볼수록 얼굴이 달아오르더군요. 어찌 이런 것도 모르고 함부로 나불거렸나... 예전에 나와 말을 섞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흉봤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책 세 권을 읽고 나니 이제는 말하기가 겁나고, 글을 쓰는 게 두려웠습니다. 오히려 더 못쓰겠더군요. 그동안 내가 전공용어라고 떠들고 다닌 게 거의 다 일본말 찌꺼기였다는 것을 알고 받은 충격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선한 충격을 동료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고 무릎을 탁 치는 부분이 나오면, 그 부분을 따서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있었던 연구실 직원 세 명에게 이메일로 보낸 거죠.
이게 우리말 편지를 보낸 한 계기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다음에...^^*
고맙습니다. |